"어린 시절, 둘이서 꾸던 꿈을 실현시킨 게임"

멀쩡한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인디게임 개발에 뛰어든 형제가 있다. 리틀 데빌 인사이드는 2015년 스팀 그린라이트에 등록되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유도 높은 시뮬레이션에 생존 어드벤처를 접목한 게임성, 독창적인 질감의 그래픽과 캐릭터로 킥스타터 목표 모금액을 넘겼다.

개발 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하지만 정체된 것은 아니었다. 착실하게 쌓아올린 끝에 PS4와 PS5로 기간독점 출시가 확정됐고, 소니 온라인 발표회에서 신규 트레일러 공개로 전세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출시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는 네오스트림의 핵심 개발자들을 만났다. 이재준-이재혁 형제, 그리고 2018년 합류한 이현석 PD다.

네오스트림 이재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현석 PD, 이재준 대표이사 (왼쪽부터)
네오스트림 이재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현석 PD, 이재준 대표이사 (왼쪽부터)

Q: PS5 퓨처 게이밍쇼에서 트레일러가 발표될 때 실시간 반응을 지켜봤는데, 해외 호응이 굉장했다. 체감이 됐나?

이재준: 킥스타터 캠페인으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새로운 시도라 해외에서 응원이 많았다. 목표 액수보다 많은 성과를 얻었다. 소니 트레일러 공개에서도 기존 게임들보다 신선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기분 좋았다.

이재혁: 게임 세계관이 가상의 유럽, 빅토리아 시대다. 특정 지역을 겨냥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해외 관심이 더 많다는 느낌도 든다.

Q: 아트 스타일이 독특한 게임이다. 지금 콘셉트를 가져간 시점과 이유가 궁금한데.

이재준: 개발 초반은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형제 둘이서 시작했는데,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선에서 깔끔한 느낌을 전하기 위해 선택했다. 현실적 배경인데 장난감이 살아 있는 듯한 캐릭터 느낌이 좋았다. 그래픽이 좋은 캐릭터가 실사처럼 움직이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나. 우리 경우는 가짜 같은 캐릭터가 진짜처럼 움직이니 '어우, 기특해' 하는 반응이 있었다(웃음).

Q: 리틀 데빌 인사이드는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형태다. 그중 어떤 것이 게임플레이의 핵심인지 궁금하다.

이재혁: TV 시트콤과 같다고 설명하곤 한다. 초자연적 현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3인의 드라마에 포커스를 맞췄다. 기본적인 대중성이나 액션이 필요해서 직업 자체를 익스트림하게 가져갔고, 일상 속 이야기에도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현석: 트레일러를 준비하면서 그런 코드를 많이 넣으려 했다. 화장실 씬이 대표적이다. 어느 정도로 표현할지 명확하진 않은데 그 선을 잘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재혁: 빈센트 박사가 편하게 지내는 모습, 빌리가 필드에서 갖은 고생을 겪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우리가 게임 연출에서 콘텐츠 대비를 중요시하는데, 트레일러에서도 각자 특성과 직업이 대비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우리 직장인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모두가 공감할 코드를 익스트림 환경에 녹이려 했다.

이현석: 게임 콘텐츠를 한 줄기로 짜려고 하지 않았다. 여러 방향으로 풀어놓고, 유저가 선택하게끔 하는 콘텐츠로 구성했다.

Q: 대조라고 했는데, 퀘스트 수행 중에 캐릭터가 힘든 상황에 놓일 때 또 다른 상황을 보여주면서 나가는 건가, 아니면 조작이 다르게 이뤄지는 방식인가?

이재혁: 플레이 면에서 대조적이다. 빈센트는 결정하고 연구하는 역할, 빌리는 필드에 나가는 역할이다. 시대적 배경도 전설과 과학이 마주치는 시점이다. 반면 캐릭터는 미니멀하게 가져간다. 부각시킬 것과 단순화하는 것을 나누는 방식이다.

이현석: 똑같은 상황을 마주쳐도 반응하는 모습을 캐릭터 성향에 따라 다르게 가져가도록 했다. 빈센트, 빌리, 올리버의 성격과 패턴은 모두 다르다.

이재혁: 유저는 3개 캐릭터를 모두 가져가지만, 그런 대비에서 괴리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보통은 빌리를 조종하는 입장인데, 빈센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장치가 있다. 의도적으로 빈센트를 미스테리한 역할로 만들고, 유저가 유추할 수 있게 만들었다.

Q: 한 스테이지당 분량과 전체 플레이 타임은?

이재혁: 메인스토리 기준으로 평균 20시간 정도. 하지만 게임의 본질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몬스터헌터에 메인스토리가 존재하지만 큰 비중이 아닌 것처럼, 스토리가 끝난 뒤 자유롭게 플레이가 이어지도록 하려 한다.

Q: 플레이타임이 어느 정도 있다면 정해진 틀도 있다는 것인데.

이현석: 메인스토리 관련 줄기가 있고, 옴니버스 이벤트나 기이한 현상이 미션 해법으로 작용하는 등 여러 연결 라인이 또 있다. 그것이 곧 플레이 유형이 되고 에피소드가 된다.

Q: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

이재혁: 형제끼리 '진짜 저런 박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했다. 당시에는 지적인 박사를 생각했는데, 캐릭터를 세계관에 합치는 과정에서 가상의 빅토리아 시대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서,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 위한 무대라고 보면 되겠다.

Q: 어릴 적 꿈인데 꽤 현실적인 면도 같이 들어간 것 같다.

이재혁: 그래서 '아 변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하. 그동안의 우리 인생사가 합쳐진 것 같아서.

Q: 리틀 데빌 인사이드라는 제목도 그런 의미인가?

이재혁: 제목 의미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말하기 어려운데, 우리가 생각한 철학이 제목과 동일시되어 일정 부분 들어가 있다. 다만 메시지를 강요하는 것은 싫어하고 그런 게임도 아니다. 회사 모토가 '게임 like 게임'이다. 게임 같은 게임, 혹은 게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자는 의미다. 플레이한 유저 스스로가 느끼는 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Q: 사막이나 혹한 등 다양한 지형이 보인다. 스테이지 단위로 구현된 것인가?

이재혁: 오픈월드를 지향하는데, 하나의 맵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개발 측면에선 하나의 맵이지만 유저 입장의 플레이 디자인은 다르다. 워킹 시뮬레이터가 되지 않기 위해 여행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쪽에 포커스를 맞췄다. 월드맵에서 포인트를 골라 가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Q: 그렇다면 빌리가 의뢰를 받고 수행하는 과정이 메인 콘텐츠가 될 것 같은데.

이현석: 유저가 제일 가깝게 느껴질 캐릭터는 빌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동선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이 빈센트다.

Q: 전투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못 했다. 여기도 다른 게임과 차별화된 부분이 있을까?

이재혁: 주인공이 영웅은 아니라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내부적인 래퍼런스로 찰리 채플린을 많이 이야기한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콘셉트다. 그래서 과학자들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괴물 헌터가 아니고 연구집단이니까. 생존이 우선이지만 연구를 위해 괴물을 잡아야 할 때도 있다.

Q: 괴물이나 초자연적 연구 성과를 얻는다면, 업그레이드를 통해 전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이재혁: 빅토리아 시대의 매력적 요소 중 하나가 스팀펑크를 넣기 좋다는 점이었다. 괴물 연구를 통해 초자연적 현상을 이용할 수 있는데, 아마 유추하실 수 있을 만한 시스템이다.

Q: PS5 플랫폼 작업에 착수하고 나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이 있나?

이재혁: 아무래도 듀얼센스 컨트롤러가 큰 변화다. 액션이나 인터랙션 버튼을 어댑티브 트리거 쪽으로 다 뺐다. 문을 밀거나 잠그거나 하는 인터랙션에도 중점을 뒀다. 그리고 햅틱 기능과의 조화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

Q: 국내 콘솔 개발자와 이야기하면, 노하우가 너무 없어서 힘들다는 이야기가 항상 나온다. 어땠나?

이재준: 지옥을 맛봤다.

이재혁: 제작 환경과 방향이 아예 다르다보니, 경력자들과 서로 맞추는 일이 아주 힘들었다. 플랫폼과 장르가 다르면 개발 방식도 다르더라.

이재준: 게다가 스타트업이라 게임 출시부터 가능할지에 대한 두려움을 매번 극복해야 했다. 그런 환경을 겪어본 사람도 드물었다. 처음엔 다들 새로운 도전을 하려 들어오지만, 직접 몸으로 겪으면 또 다르다. 생각을 맞춰가는 과정도 힘들었고, 그래서 떠난 사람도 있다.

이재혁: 그래도 감사하다. 지금도 많은 인력이 힘을 내주고 있다. 이것만 해도 재산인 것 같다.

이재준: 같은 곳을 보는 친구들끼리 모이는 과정이 정말 오래 걸렸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행복하고, 이대로 끝까지 가고 싶다.

Q: 형제 개발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됐는데, 처음 게임개발을 결심한 사연을 듣고 싶다.

이재준: 1985년쯤,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때 배우면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당시엔 아주 단순한 아케이드 게임이 전부였는데, 최대한 많은 게임을 해보고 싶어서 동생과 함께 전국 오락실 탐방까지 다녔다.

호주에서 1998년에 회사를 설립할 때 게임을 같이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는 게임을 만들려면 사람과 자본이 많아야 했고, 당연히 불가능했다. 광고사업으로 가능한한 수익을 내면서 틈틈이 개발해보자고 생각했다.

이재혁: 괜찮은 평가를 받은 회사였다. 그런데, 일이라는 게 계속 루틴을 돌다 보면 꿈에서 점점 멀어지더라. 작은 게임도 몇개 만들어봤는데, 그런 식으로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 둘이서 다 때려치우고 같이 (게임개발을) 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하실로 같이 들어갔다.

이재준: 밖으로 돈 세월이 17년이 넘다 보니 지금 아니면 영영 못 하겠다 싶었다. 노안도 슬슬 오는데... 그렇게 3년을 둘이서만 대화한 것 같다. 형제식 대화가 따로 생겼다.

이재혁: 아버지도 처음엔 엄청나게 걱정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하고 싶은 것 한번 해봐라"면서 지원과 응원을 해주신다.

Q: 후속작 계획도 있나?

이재혁: 세계관을 구성해둔 범위는 굉장히 넓다. 예를 들어 어릴 적 꿈이 요괴대백과라면 국가별로 수없이 많은 요괴가 있지 않겠나. 우리도 원래 세계관을 다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재 스토리의 스핀오프도 생각해둔 것이 있다.

Q: 기존 게임 중 리틀 데빌 인사이드와 비슷한 작품을 꼽을 수 있을까?

이재혁: 최대한 비슷하지 않은 것이 목표다. 굳이 부분만 떼어 생각해보면, 자유도나 일상 콘텐츠는 동물의숲? 전투 업그레이드 측면에서는 엑스컴과 비슷한 점도 있겠다. 탐험과 의뢰 수행은 대항해시대 같은 측면도 있고.

해외 포럼에서는 구르기나 회피 액션 때문에 다크소울 이야기도 조금 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 때문에 젤다와 다크소울의 차이점에 대한 논쟁으로 흐른 적도 있다.

Q: 인디게임의 콘솔 도전이 늘어나고 있다. 먼저 겪어본 입장에서 개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재준: '바라보는 방향이 같느냐'가 중요하더라. 소규모로 어려운 길을 도전하는 과정은 험난하다. 동지 입장에서 그 어려움을 잘 안다. 시행착오도 많을 것이다. 같은 처지에서 함께 힘을 냈으면 한다.

이현석: 콘솔 경험을 가진 한국 개발사가 거의 없다. 같이 일궈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지 있는 분끼리 함께 모여 이뤄나갈 수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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