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회귀: 블랙서바이벌(이하 블랙서바이벌)의 기세가 멈출 줄 모른다. 11월 말 2만 5천명을 달성한 스팀 일일 최대 동시접속자는 12월 2일 4만명, 6일 5만명을 넘겼다.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1만명 넘게 오르는 폭증세다. 

입소문이 퍼진 기폭제는 스트리밍 방송 유행이지만, 오직 방송에 많이 노출된다고 해서 모든 게임이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가 있다. "별 것 없어 보이는데 왜 화제지?"라고 반신반의하며 접속해본 다른 스트리머나 유저들도 어느 순간 홀린 듯이 빠져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오직 PvP 콘텐츠인데도 불구하고, 플레이하면서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블랙서바이벌이 가진 재미가 오래 가는 이유다. 초반에 무력하게 탈락해도 의지가 꺾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다음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멀티플레이 게임으로서 최고의 장점이다. 

말은 쉽지만, 누구나 이런 설계를 할 수 있다면 흥행작 개발에 고생할 이유가 없다. 블랙서바이벌은 어떻게 유저 스트레스를 없앴을까.

키아라가 원석이 안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망했습니다
키아라가 원석이 안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망했습니다

"아, 이걸 죽네, 운빨겜"

유저간 대결에서 패했을 때 심리적 방어기제 작동은 중요하다. 만일 철저하게 재능에서 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도 따라잡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신규 유저는 떨어져나간다. 대전격투 등 컨트롤 중심 장르에서 초보를 찾기 힘든 이유다.

대중적으로 흥행한 PvP 온라인게임은 방어기제가 잘 작동했다. LoL이나 오버워치에서 진 것은 난 잘했지만 팀운이 없었기 때문이고, 하스스톤 패배도 난 잘했지만 12시(상대)가 오른쪽 드로우에서 사기를 쳤기 때문이다. 배틀그라운드 역시 내 총 실력은 문제가 없고 자기장 운이 나를 버린 것이다. 이런 심리가 존재해야 다음 성적은 더 좋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게임을 지속할 수 있다. 

블랙서바이벌은 유저 심리설계가 촘촘하다. 배틀로얄이지만 핵심 무기가 나와야 본격적 전투에 들어가고, 파밍 루트와 재료 아이템 획득 변수는 모든 참가자가 유기적으로 공유한다. 라이터가 꼭 필요한 유저가 2루트로 학교에 진입했는데 다른 유저에게 모두 빼앗긴 뒤라면 계획은 어그러진다. 반면 가장 먼저 뒤진 상자에서 필수 재료가 나올 경우 속도에서 크게 앞서나간다.

원하는 무기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얻는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운 요소는 중요하다. 하지만 운이 전부는 아니다. 하스스톤처럼 확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에서 실력이 갈린다. 적들의 특징을 파악해 이득을 노릴 수도 있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변수와 실력이 균형을 맞춰 어울린다는 의미다.

"보인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처음 플레이한 유저는 쉽게 죽으면 진입장벽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해보면 게임이 가진 장벽이 생각보다 매우 낮다는 것을 알게 된다. 캐릭터 스킬은 대부분 직관적이라 이해하기 쉽고, AOS 장르에서 사용되는 시점은 시야각이 편안하다. 

블랙서바이벌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탈선할 확률은 적다. 하나씩 계단식으로 배워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우선 정해진 루트를 돌며 지정 장비를 빠르게 맞춰본다. 익숙해지면 드랍 재료로 제작 가능한 더 좋은 장비나, 플랜B 루트를 연구하게 된다. 그 다음은 피쉬앤칩스로 대표되는 요리의 세계에 빠진다. 슬슬 베테랑 유저가 된다면, 트랩 제조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반드시 다른 유저보다 실력이 뛰어나야 익히는 것이 아니다. 사망한 다음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신이 이번에 어떤 점에서 실수했는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굳이 한 지역 풀파밍을 하겠다며 동선을 허비했거나, 루트를 변경해 금지구역을 미리 다녀올 생각을 하지 못했거나, 눈치싸움 중에 섣불리 근처 상대에게 돌격했다가 어부지리를 당했거나.

이 모든 과정은 지극히 직관적이다. 1:1 전투도 마찬가지다. 궁극기를 너무 아꼈거나, 상대 기절 스킬을 회피기로 피할 생각을 못 했거나 등 자신이 실수한 모습은 바로 눈에 들어온다. 유저는 운 탓을 하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로 배운다. 

블랙서바이벌의 종결은 트랩 제작
블랙서바이벌의 종결은 트랩 제작

"이번주에도 패치가 있을 것을 알기에"

게임 토대를 잘 만들어도 개발사가 밸런스 조정이나 콘텐츠 추가에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주저앉은 사례가 많다. 블랙서바이벌은 그 걱정도 불식시키고 있다. 유저들이 마음 놓고 게임을 즐기게 된 비결 중 하나다.

얼리액세스 과정에서 밸런스 패치는 매주 이루어지고 있다. 다수 캐릭터 대결의 특성상 완벽한 밸런스란 존재하지 않는데, 빠른 조정과 루트 시스템으로 보완해나가는 중이다. 또한 전체 유저통계로 캐릭터별, 무기별 승률이 모두 공개되어 상향이나 하향이 필요한 캐릭터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다. 

피드백과 이슈 대처도 빠르다. 개발사 님블뉴런은 AOS 장르의 점멸에 해당하는 퀀텀 점프 추가 계획을 로드맵에 밝힌 적이 있다. 다수 유저들은 각종 이유를 들어 반박하며 반대 의사를 밝혔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계획을 폐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6일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오브젝트를 소환하는 부정행위가 제보되자, 하루 만에 무점검으로 보안 업데이트를 진행하면서 지속적인 보안 대책을 약속했다. 이번주 업데이트는 기존 캐릭터 3종의 신규 무기를 등장시킨다. 판도가 계속 바뀌면서 새로운 재미를 끊임없이 공급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가장 큰 매력이다.

스트레스가 빠진 자리, 즐거움이 되돌아오다

블랙서바이벌에 빠진 유저가 모두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 다음 게임 시작에 전혀 고민이 없다. 마치 문명에서 "한턴만 더"라고 되뇌이는 것처럼,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겠다며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멀티플레이 게임의 새로운 타임머신이 될 조짐이다.

모든 것은 스트레스 설계에서 나왔다. 배틀로얄 장르에서 어떻게 사망하든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AOS의 시점과 배틀로얄의 법칙을 섞는 동시에, 블랙서바이벌 원작 모바일게임에 존재하던 파밍 시스템을 정교하게 얹은 결과다.

게임을 할수록 지친다던 유저들이, 블랙서바이벌에서 플레이를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이 게임의 최고점이 어디일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템포로 정식 출시까지 채워나갈 경우 오랜 시간 우리 옆을 지키는 게임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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