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만 더"

전형적인 사망플래그 대사를 중얼거리게 되는 게임이 있다. 루프 히어로(Loop Hero), 최근 스팀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게임이다. 출시 일주일 만에 판매량 50만장을 넘겼고, 95%의 압도적 긍정률을 유지하고 있다.

겉보기에 매력적인 게임은 아니다. 투박한 2D 도트 그래픽, 어설픈 공격 모션, 느릿느릿한 진행은 정말 이 게임이 재미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반신반의한 채 루프를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사라져 있다.

이 게임은 유저의 심리를 창의적으로 찌른 뒤, 그 속에서 재미를 끄집어냈다. 인간은 누구든 리턴을 향한 욕망,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갖는다. 둘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만들어진 것이 루프 히어로의 게임성이다.

"욕심 부리다 파멸할 것이냐, '쫄보'로 제자리에 맴돌 것이냐"

컨트롤에서 개입할 부분은 전혀 없다. 끝없는 혼돈 세계에 떨어진 주인공은 스스로 이동하고, 자동으로 싸운다. 유저가 할 일은 주인공이 얻은 전리품을 활용하는 것이다. 맵에 지형지물을 설치해 회복 수단이나 강한 몬스터를 마련하고, 더 좋은 검과 장비를 골라 착용시킨다. 주인공과 적은 서로 순환하면서 성장한다.

보드게임판과 비슷하다. 출발지점(야영지)으로 돌아올 때마다 유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얻은 재료를 들고 야영지에 귀환해 건물을 세울 수 있다. 혹은 다음 루프로 여정을 유지해 더 강한 적과 전리품을 노려도 된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 도중에 죽어버리면 여정에서 얻은 모든 아이템을 잃어버린다.

후반부에 루프 한번을 더 돌면 보상은 훨씬 커진다. 더 강한 적을 쓰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리스크도 동시에 커진다. 적대적 지형지물이 많을수록 변수는 커진다. 강력한 몬스터가 동시에 여럿 난입하기도 하고, 뜻밖의 디버프가 고통을 주기도 한다.

유저는 언젠간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각 장마다 일정 루프를 돌아야 등장하는 보스 때문이다. 지나치게 안전지향적 플레이를 하면, 오히려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오래 걸린다. 너무 욕심을 부려도, 너무 겁먹어도 효율은 떨어진다.

근거 없이 루프를 타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근거 없이 루프를 타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못 먹어도 'GO', 하지만 정말 못 먹으면?"

여기서 떠올리게 되는 게임의 시스템이 있다. 한국 국민게임 '고스톱'이다. 이 오프라인 카드배틀 게임은 건전하게 즐길 경우 훌륭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다. 확률 계산, 유저 견제 전략과 함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리스크와 리턴의 관리다.

먼저 3점 이상 얻은 유저는 여기서 멈춰 낮은 점수로 승리할지, 혹은 게임을 계속 진행에 더 높은 점수를 노릴지 선택한다. 상대의 점수 획득 가능성과 손패 상황을 통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확신을 가지고 "고"를 외친다고 해도,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터지면서 역전되는 일은 다반사다.

루프 히어로가 고스톱에서 영감을 받았을 리는 없다. 하지만 두 게임에서 나타나는 심리와 선택의 딜레마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변수를 피하기만 하면 결국 손해를 본다. 언제 치고나가는 선택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결국 자신의 계산대로 성취했을 때 짜릿함, 매번 다른 변수로 나타나는 긴장감은 다른 종류의 게임에서 체감하기 어렵다.

루프 히어로를 파고들수록, 변수 통제 시스템도 치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카드덱 빌딩을 통해 최대한 유저가 원하는 방식으로 루프를 끌고 나가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재료를 파밍해 야영지를 키워나가고, 건물 기능을 바탕으로 주인공이 성장하는 선순환도 중요한 재미 요소다.

"유저 심리학 전문가들의 반란"

개발사 포 쿼터즈는 전작부터 잠재력을 보였다. 제발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세요(Please, Don’t Touch Anything)라는 제목의 게임은 유저 앞에 빨간 버튼 하나만 보여주고, 절대 누르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못 참는다. 버튼을 건드리는 순간 고난이 시작되고, 이후 조작에 따라 수많은 엔딩 갈래가 만들어진다.

그들은 루프 히어로를 통해 유저 심리를 자극하는 능력을 다시 증명했다. 루프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럽게 욕심은 불어나고,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긴박감을 만든다. 변수와 위험요소를 최대한 통제하는 과정에서 게임성이 탄생한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즐기는 유저에게 루프 히어로는 매력적인 게임이다. 마지막 한 바퀴만 루프를 돌면 보스를 잡을 견적이 나오는 순간, 용사의 HP가 어중간하다면 선택은 유저에게 달렸다. 모든 성과는 그 선택의 몫이다. 모든 비극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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