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념과 작품성을 정부가 채점한다. 중국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중국은 4월 1일부터 새로운 채점 제도를 시행해 판호 심사를 진행해왔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선전부가 배포한 '게임 심사 채점 세칙' 문서가 기준이다. 최종 심사를 마친 후, 심사에 참여한 출판국 전문가들이 해당 게임에 점수를 매긴다.

점수는 판호 획득에 영향을 준다. 5개 항목에서 평균 3점 이상을 받아야 판호 승인이 가능하다. 동일 조건에서는 4점 이상의 게임에 우선순위가 부여된다. 단, 항목 하나라도 0점이 나오면 전체 불합격이다.

판호 채점제는 국외 게임들에게 부여하는 외자 판호에도 적용한다. 즉, 중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채점 기준은 개요만 볼 때도 놀랍지만, 세부 항목을 살펴볼 경우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사회주의 사상에 위배? 불합격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관념 지향' 항목이다. 게임 주제, 유저 역할, 플레이 방식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한다.

그밖에도 긍정적 에너지 전파 여부, 도덕 교육 육성에 적합 여부, 정확한 역사관/인생관/가치관/세계관 구비 여부가 명시되어 있다. 게임에 명확한 정치적 지향이나 가치관 편차가 없으면 3점, 자발적이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경우 가산점이다. 올바르다는 것은 중국이 원하는 사회주의 가치관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 항목이 절대적 필수 관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지향에 명확한 문제가 있을 시 0점으로 채점하며, '일표 부결(전체 불합격)' 판정이 내려진다.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판호 심사에서 떨어질 수 있다.

중화 문화를 전파하는 내용은 가산점이 붙는다. 반면 게임에 부적절한 국가, 민족, 종교, 역사문화에 대한 지식이 존재할 경우 감점한다. '상식적 오류'가 빈번히 발생할 때도 감점이다. 채점하는 주체가 중국공산당 출판국이므로, 상식 역시 그쪽 기준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국가가 작품성으로 판매 여부를 정한다?

겉으로 드러난 논란은 가치관 검열이지만, 작품성 검열 항목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활용법에 따라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떠오를 수 있는 씨앗이다.

'제작 품질' 항목은 게임 장면, 캐릭터 설정, 시나리오 등의 제작이 얼마나 정교하느냐를 진단한다. 과학적-역사적 사실이나 합리적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지가 판단 기준에 있어서, 중국 기준의 역사적 사실이 아닐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모든 문화콘텐츠가 그렇듯, 게임 역시 수작과 졸작이 존재한다. 재미없고 질 떨어지는 게임은 유저에게 비판을 받고 몰락하는 것이 시장 법칙이다. 그러나 그런 게임 역시 누군가에게 판매를 할 권리는 가진다. 졸작이라는 이유로 국가 심의에서 판매를 불허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무엇보다, 작품성 수준을 소수 전문가가 결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최대한 많은 주관적 의견이 모여 객관성에 수렴하는 것이 작품 평가다. 채점의 탈을 쓰고 게임 통과 여부를 마음껏 결정할 수 있다고 의심이 가능하다.

게임에 유료충전 유도가 있을 경우 감점한다는 항목은 얼핏 사행성을 억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부분유료화 게임은 충전 유도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정도와 가격의 차이가 있는데, 그 기준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것 역시 판호 발급을 걸러내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문화검열의 완벽한 '반면교사'

창작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문화사에서 끝나지 않는 숙제다. 명백한 혐오나 반윤리적 메시지를 담을 경우 제재할 필요가 있지만, 혐오의 용납 수준을 규정하기 어렵다. 국가 심의가 과할 경우 자유로운 표현이 위축될 수 있다.

중국은 가장 위험한 검열 사례를 이번 게임심사 제도에서 실체화했다. 동북공정에 문화를 활용하던 움직임과 맞닿을 수 있다. 한복, 김치 등 한국의 전통 문화를 예속하려는 시도가 향후 게임에 더 적극적으로 나타날 우려가 생긴다.

이번 채점제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원칙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하며, 주관적인 느낌을 배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항목 기준부터 주관적이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정부 결정에 의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사회체제도 이런 주장을 퇴색시킨다.

중국시장 진출을 꿈꿔온 게임사들은 거대한 이념 시험대를 만나게 됐다. 개발 초기부터 과감한 내용을 자제해야 하는지, 중국을 만족시키는 내용을 넣을 것인지 고민에 빠질 수 있다. 경제규모 15조달러의 중국이 벌이는 문화검열은, 한 국가 문제를 넘어 전세계를 향한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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