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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사람을 웃으면서 화나게 하는 법
길용찬 기자 | 승인 2021.05.03 19:22

"이 게임을 왜 만들었냐고요?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요" - 배넷 포디

스팀게임 탐방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혹은 게임실황을 즐겨 본다면 반드시 마주쳤을 부류가 있다. 즐기는 게임이 아니라 악의를 가지고 설계된 '프로그램'에 가까운 어떤 것. 고통류 게임들이다.

전성기를 연 게임은 Getting over It, 흔히 항아리게임으로 불린다. 개발자 배넷 포디는 QWOP와 CLOP 등 전작에서 인디게임계의 악마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항아리 속 남자의 끔찍한 조작감, 인간 감정을 가지고 노는 듯한 레벨디자인은 순식간에 수많은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줬다.

오마주 게임인 Golfing Over It을 비롯해 점프킹, 포고스턱 등 아류작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고통류 플랫포머'는 그렇게 하나의 장르가 됐다.

보드게임 '뱀과 사다리'

* 성취감과 '절망감', 그 사이의 밸런스

대중적 취향은 절대 아니다.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왜 많은 유저가 자신의 돈을 지불하고 굳이 고통을 찾아 헤매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잘 만든 고통 플랫포머는 절망감에 비례해 성취감이 극대화되도록 설계한다.

이 장르의 모태로 꼽을 만한 고전 보드게임이 있다. 영국에서 출시한 뱀과 사다리(Snakes and Ladders), 주사위 보드게임의 조상이다. 눈금이 나온 만큼 전진하는데, 사다리에 걸리면 올라가고 뱀에 걸리면 추락한다. Getting over It 후반에 등장하는 뱀에 잘못 걸리면 최초 지점까지 추락하는데, 이 게임의 오마주로 추측된다.

뱀과 사다리가 고전 명작인 이유가 몇 있다. 우선 누구든 창의력을 발휘해 맵을 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성공 이벤트와 절망적 이벤트가 밸런스를 맞춘다. 높이 오를수록 리스크는 커진다. 추락하고 나면 깊은 좌절감이 자리를 메우는 대신, 다시 오르기는 쉬워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합리한 함정만 넣는다면, 그런 고통을 즐기는 유저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점프킹의 경우 실패해도 상관없는 점프 구간을 충분히 넣어둔다. 대신 후반 리스크를 조절한다. 어떤 실패는 조금만 아래로 떨어지고, 또 어떤 곳은 가장 아래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그 밸런스를 잡는 과정이 좋은 고통 플랫포머를 만드는 과정이다.

페이커도 즐기(?)면서 더욱 화제가 된 게임 포고스턱

* 조작감은 '적절하게' 조악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숙련을 위해

항아리 속에서 망치를 처음 잡았을 때는 바위 하나를 오르는 것도 조작이 쉽지 않다. 그러다 수없이 추락하는 경험을 되풀이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초반 부분을 막힘없이 뛰어올라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조작감이 난해하다는 것은 반대로 숙련될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다. 추락하는 절망감을 아무리 겪어도 초반 난이도가 같다면, 유저 이탈은 쉬워진다. 조작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다시 도전할 동기부여가 된다. 물론 포고스턱처럼, 며칠을 해도 컨트롤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악질 게임도 존재하지만.

배넷 포디는 그 조작감을 가장 잘 조련해낸 개발자다. '미친 말 게임'으로 불린 CLOP이 대표적이다. 유니콘의 4개 다리를 4개의 키로 각각 조종해야 하는 최악의 난이도인데, 플레이를 조금만 반복하면 평지를 달리는 일이 매우 자연스러워진다. 대신 내리막길과 언덕을 배치하면서 새로운 고통을 제공한다. 단계별로 감정을 조종하는 절묘한 기획이다.

게임이 너무 즐거워서 개발자 주소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 알트F4

* 게임으로 '소통'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큰 반향을 얻은 한국게임도 있다. 알트F4(ALTF4)는 닭을 배달하기 위한 기사의 험난한 여정을 다룬 게임으로, 단 2,200원 가격에 엄청난 감정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높은 가성비를 자랑했다. 놀랍게도 스토리 모드 추가를 계획 중이다. 전세계 유저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정식출시 버전을 기다리고 있다.

악랄한 줄 알면서도 이 악물고 클리어에 도전하는 것은, 핵불닭의 매운맛에서 고통과 동시에 묘한 쾌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고통 플랫포머는 적어도 위장을 해치진 않으니 이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대신 인성을 해칠 위험은 있지만.

주의사항이 있다. 유쾌하게 화나는 게임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오직 화만 남기는 게임은 불쾌감만 남긴다. 개발자들이 이 방면에 도전했지만, 다수는 악평만 받은 채 사라진 것도 그런 이유다.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선을 지킨 상태에서 치밀하게 악랄해야 한다. 의외로, 수준 높은 작업이다.

좋은 고통게임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뉴미디어를 통해 보는 게임이 엔터테인먼트가 된 시대다. 고통을 예능과 성취로 승화하려는 수요가 많아졌다. 그 성취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꽃피었으면 한다. 나 빼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고통받길 바란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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