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데이빗 핀처의 신작 ‘나를 찾아줘(Gone girl)’가 곧 개봉합니다. 북미에선 이미 개봉하여 핀처 감독 작품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박스오피스 1위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영향일 수도, 혹은 ‘하우스 오브 카드’로 인해 그의 명성이 더 널리 알려져서 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나니 이 흥행은 전적으로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 때문이라고 말 해야겠습니다.

블록버스터 수준의 흥행을 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평단과 일반 대중을 고르게 만족시키며 작품의 질이 널뛰지 않는 감독은 흔치 않습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에일리언3’를 제외하면(감독 자신도 가장 후회하는 필모그래피입니다. 개인적으론 재미있게 봤지만, 제작사의 입김과 빡빡한 스케쥴로 인해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고른 완성도와 작품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의 영화들은 재미있습니다.

'나를 찾아줘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전직 작가인 닉 던과 그의 와이프 에이미 던은 겉으로 보았을 땐 로맨틱한 인생을 사는 완벽한 커플입니다. 하지만 결혼 5주년 기념일날 아내 에이미 던이 실종되고, 남편 닉 던이 실종신고를 합니다. 에이미는 그녀의 어머니가 쓴 유명 동화인 ‘어메이징 에이미’의 모델로써 세간의 유명인사이기도 합니다. 실종사건은 점점 더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세상은 연일 실종사건을 다루며 떠들썩해집니다. 이 와중에 닉 던이 그녀를 살해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스릴러 무비의 전통을 따라, 수수께끼를 던지고 그것을 따라가는 인물들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켜나갑니다. ‘나를 찾아줘’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스릴러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것처럼 연출되어있습니다. 트렌트 레즈너의 스코어와 맞물려 모든 장면이 단서처럼 보이고 모든 인물이 사건과 연루 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테면, 잘 쓴 탐정소설은 실제론 그렇지 않더라도 모든 상황과 문장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열쇠처럼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 새로운 진실에 맞닥뜨리게 되면,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관객들은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영화 안에선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입니다. 살인사건/실종사건을 해결하는 스릴러 무비에서 권력과 대중매체를 두고 두뇌싸움을 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드라마로 자연스럽게 전환됩니다. 실제로 이렇게 전반부와 후반부가 영화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질 때 자칫하면 촌스럽고 맥이 빠지기 마련인데도, ‘나를 찾아줘’는 그것을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러우며 양측의 이야기가 서로의 페이스를 더 올려주기도 합니다.

영화가 다루는 캐릭터나 휘말리는 사건들이 너무나 많아서 마치 24부작 미드를 2시간 40분 안에 압축 시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종일관 사건이 벌어지고 진실을 파헤치며 그것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사실이 밝혀지고 그러는 와중에 또 다시 한쪽에선 사건이 벌어집니다. 닉과 에이미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조차 인생이라는 강력한 자장 속에서 어떤 조류에 휘말린 것이나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그의 전작 ‘세븐’에서 존 도우가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신비스런 인물이었다면 ‘나를 찾아줘’에서는 그런 인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신비스러운 것이라면 ‘인생’이나 ‘결혼생활’, 혹은 모든 인간관계로 인해 촉발되는 화학적 연쇄반응 같은 것들입니다.

말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이런 것들을 영화 안에 구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많은 감독들이 평생을 들여서도 실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최루성 감동과 슬픔, 코미디를 함께 담으며 ‘명작’ 영화가 되려고 하는 야망과 비슷하다고 해야겠습니다. 조악하게 말해서 ‘사랑과 전쟁’을 가지고 재미까지 있으면서 영화적 완성도도 뛰어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데이빗 핀처라는 감독입니다.

2시간 4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지루함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영화입니다. 시종일관 미간에 5m정도 당겨 팽팽하게 늘어난 고무줄을 대고 있는 기분입니다. 아주 평온한 장면까지도 긴장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운드와 갑갑한 장면연출로 억지 긴장감을 이끌어내 피곤하게 만들지도 않으며, 그 긴장감의 거의 모든 부분을 서사에서 끌어오고 있습니다. 스크린 플레이와 서사가 이토록 밀접하게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영화도 참 오랜만에 접하는 것 같군요.

배우들의 연기 역시 굉장합니다. 닉 던 역의 벤 에플렉의 능글맞은 바람둥이 연기도 인상깊었지만, 역시 에이미 던 역의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가 인상깊었습니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본성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에 마치 제 심장이 옥죄어오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외의 조연들도 역시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항상 기대하게 되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신작이지만, 대체 이 감독은 어느정도까지 발전을 하게 될까 하는 경외감까지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이 긴 영화에서 (장르적이라 할지라도) 버릴만한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역대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조디악’같은 명작을 내놓은 감독으로써, 이토록 날이 선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항상 놀랍습니다.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감상해야 할 영화입니다. 스릴러 영화이면서 잔인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그러면서도 시종일관 긴장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잔인한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한장면 정도 등장합니다.) 잔인함 때문에 스릴러 영화를 꺼려하셨던 분들께도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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