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디게임 기대작 중, 로스트 아이돌론스는 조금 특이합니다.

스팀게임은 트렌드에 민감합니다. 개발력과 마케팅 한계로 인해 가장 많은 유저가 즐기는 장르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고, 최근 떠오른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그라이크, 혹은 플랫포머 액션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로스트 아이돌론스는 유럽 중세 배경의 턴제 SRPG를 들고 나왔습니다. 마니아 위주의 시장이죠. 개발 인력도 수십명 단위로 갖춰졌습니다. 글로벌 기준에서는 인디게임으로 분류되어 엑스박스 인디 쇼케이스에서 최초 공개됐지만, 분명 준비를 꽤 많이 하고 달려드는 도전입니다.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스팀 서머 페스트에서 기간 한정으로 데모 버전이 열린 것이죠. 2시간 정도의 짧은 플레이에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단단한 뼈대였습니다.

기본 뼈대는 '파이어엠블렘'

데모는 에피소드 7과 8로 구성됐습니다. 메인스토리 대화 중 일부가 비었고, 더빙 역시 아직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투는 온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파이어엠블렘 시리즈, 그중에서도 최근작 풍화설월을 참고한 흔적이 선명합니다. 처음 턴제 전략이라는 정보가 공개됐을 때 '중세 엑스컴'이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그보다는 '중세 파엠'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개발 인터뷰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고요.

공격이나 기술 커맨드를 적에게 사용하면 예상 대미지와 반격 대미지를 표시해주고, 실행했을 경우 짧은 액션 컷인으로 전환되어 공격을 주고받습니다. 적의 공격대상을 미리 예측해 붉은 선으로 표시해주는 시스템도 비슷하죠.

에피소드는 전투로 구성되고, 그 중간에 병영에서 행동이 가능한 페이즈가 있습니다. 전투 주요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퀘스트를 수행하고, 동료 육성 상태에 따라 전직을 시킬 수도 있고요. 시설물을 키워서 막사를 발전시키는 콘텐츠도 존재합니다. 

세계관이 달라서인지 비행 병과는 보이지 않았는데, 데모는 게임 일부분인 만큼 그밖에 어떤 직업이 존재하는지는 나중에 판단할 수 있습니다. 크게 나이트와 워리어 같은 근접 전투원, 헌터나 위자드 같은 원거리 전투원으로 나뉩니다. 회복이 가능한 프리스트도 있고요. 조합과 기본 전략 구성은 정통 SRPG의 틀을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공성 전략과 몰입, '이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로스트 아이돌론스가 파이어엠블렘을 무차별 모방한 것은 아닙니다. 비주얼은 독자적으로 재무장했습니다. 중세 유럽 세계관에 마법사가 존재하는 판타지 설정을 가미했죠. 

이벤트씬에서 모션이 군데군데 어색한데, 전체적 그래픽은 저예산 게임 중에서도 준수합니다. 인물 모델링과 갑옷, 무기 모델링 역시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느껴집니다. 서구권 유저들에게 매력을 보여주기 충분해 보입니다.

전투 시스템에서도 파이어엠블렘과 다른 점은 있습니다. 공성 시스템이 대표적이죠. 모든 성문은 각자 내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에 근접해서 공성 전술을 사용해 내구도를 깎을 수 있고요. 성 내부에 진입할 경우 좁은 골목과 고저차로 인해 또다른 구도가 펼쳐집니다.

성벽에서 공격하는 적 원거리 유닛과의 전투, 공성추가 성문을 두드리는 연출 역시 실제 전쟁 같은 몰입감이 나옵니다. 데모는 성을 공격하는 전투만 즐길 수 있었는데, 성 지형지물을 이용해 적군의 대규모 침공을 막아내는 에피소드도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캐릭터와 대화, 조금 더 개성이 묻어난다면

아직 개발 중인 게임이라 다듬을 점도 많이 보이는데요. 흔히 짚지 않고 넘어갈 만한 요소로 캐릭터메이킹을 들고 싶습니다. 외부 디자인을 떠나 성격과 개성 부여가 중요합니다.

육성이 존재하는 SRPG는 실제 싸우는 동료 캐릭터를 향한 몰입이 큽니다. 유저의 계획에 따라 어떤 조합으로 키우느냐도 큰 재미고, 혹여나 사망 위기에 처하면 긴장감은 몇배 치솟죠. 하지만 로스트 아이돌론스에서 동료들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느낀 감상은, 모두 '중세 병사'에서 떠올리는 스탠다드 성격에 그대로 머무른다는 겁니다.

캐릭터 개성이 다른 에피소드에서 보충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데모에서는 선명하게 느끼지 못했죠. 중세 군대 조직에서 구성원이 획일화된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어떤 조직이든 튀는 성격과 성질은 분명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인물들은 내러티브를 살려주는 극중 장치 역할도 합니다.

그밖에 UI에서 불편한 부분이 많았는데, 개발사 역시 관련 피드백을 인지하고 고치겠다고 발표했으니 다음 버전에서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행동이 끝난 유닛과 남은 유닛을 직관적으로 구분하는 기능은 가장 먼저 추가해야 할 듯합니다.

이 정도면 훌륭한 '데모'

로스트 아이돌론스 데모를 총평하자면 기대 이상입니다. 섬세하게 만들려면 한도 끝도 없는 장르인데, 대규모 인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섬세했습니다. 고칠 점도 많지만 기반 시스템이 재미있고 그래픽 틀은 준수합니다. 

난이도 역시 만족스러웠습니다. 데모는 어려움 모드만 열렸는데, 적당한 수준으로 까다로운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마니아를 위한 밸런스죠. 출시 버전에서 다양한 난이도가 마련된다면 누구나 재미있게 즐기는 SRPG가 완성될 가능성이 큽니다.

로스트 아이돌론스 얼리액세스 출시는 10월입니다. 세부적으로는 개선이 필요한 만큼 촉박한 개발 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쌓아올리는 게임이 되길 빕니다. 이런 게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귀한 기대작입니다. 특히 한국 인디게임 중에서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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