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멸망했고 벙커 밖은 군인과 괴물들이 전투하는 전쟁터다.

제로 시버트는 핵전쟁 이후 멸망한 동유럽 배경의 인디게임으로 생존을 위해 벙커를 나서는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바깥세상은 일반인의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며 도적, 군인, 야생동물, 방사능 괴물이 호시탐탐 목숨을 노린다.

게임의 개발 규모는 작은 편이나 특유의 감성을 흥미롭게 표현했다. 수색 활동 중 사망 시 아이템을 잃는 하드코어 요소는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가 떠오르며 총 한 자루에 의지해 방사능 변이 괴물들과 싸우는 장면은 스토커 시리즈의 처절함도 느껴진다.

처절한 생존기는 물 2병과 총 1자루, 작은 학교 가방과 함께 시작된다. 작전 기지 벙커의 군인들은 외부에 나가 죽음을 맞이할 신참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며 말을 거는 것조차 거부한다.

그나마 내부의 바텐더와 의무대장은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처음 야외로 나가는 주인공에게 작은 퀘스트를 던져주며 모험의 갈피를 잡아주는데, 대사의 대부분이 ‘살아 돌아온다면’을 전제로 깔고 있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다.

벙커를 벗어나면 입구에서 기차를 탈 수 있으며 지역을 선택해 본격적인 모험을 떠난다. 모험 지역은 숲, 임시 생존자 캠프, 늪, 발전소, 쇼핑센터, 폐공장으로 나뉘며 모든 지역으로 자유롭게 이동 가능하나, 숲을 제외하면 지옥 같은 난도를 경험할 수 있다.

첫 지역 숲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그나마 탐험이 쉬운 편인데, 처음 게임을 접하는 유저가 숲을 전부 탐험하고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역을 모두 수색하기 어려운 이유는 실력을 떠나 가방의 무게 제한 같은 물리적인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퀘스트로 주어지는 각종 문제는 해결을 위해 반복 탐험이 필요해 목표 지역만 수색하고 탈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위험 요소는 탐험 지역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생환을 어렵게 만든다. 인간이 사라진 야외는 멧돼지와 늑대 같은 야생동물이 날뛰는 환경이며 방사능의 영향으로 모습이 변한 괴물들도 야외를 배회한다. 

탐험 초기 괴물들은 야생동물에 가까운 행동 패턴을 보이며 게임이 진행될수록 거대하고 강력해진다. 특히 쇼핑센터에서 주로 등장하는 ‘빅’은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습격할 정도로 지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위협적인 적은 동물과 괴물이 아닌 도적과 군인 같은 적대 NPC인데, 캐릭터를 인식하는 순간 대화는커녕 총을 마구잡이로 발사한다. NPC는 시야뿐만 아니라 각종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적을 처치하기 위해 안일하게 총을 격발하는 순간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들키기 십상이다. 

배고픔 및 목마름, 방사능 오염 같은 생존 요소가 인상적이다. 배고픔과 목마름 상태는 시시각각 변하며 최고 상태를 유지하지 않을 경우 이동 속도가 느려지거나 무게 한도가 줄어들어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음식은 바텐더에게 구매하거나 탐험 중 획득하는 재료로 직접 제작할 수 있다.

탐험 중 각종 요소로 캐릭터가 사망할 경우 수색 중 획득한 모든 아이템이 사라지며 입장할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벙커 창고에 보관한 아이템은 그대로 유지되는데, 이를 이용해 당장 제작에 필요한 아이템만 빠르게 회수하고 작전 지역에서 탈출하는 편이 유리하다.

돈과 재료가 쌓이면 장비를 구매하거나 직접 제작할 수 있다. 판매 장비는 퀘스트 해결 순서에 따라 점점 도적 수준에서 군인 레벨로 상승하며 특정 장비를 착용할 경우 벙커의 다른 군인들에게 먼저 인사를 받을 수 있어 성장 이유가 충분한 편이다.

제작은 장비뿐만 아니라 요리, 의료용품, 침구류, 스킬 팩 등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든다. 제작을 위한 재료 수급은 게임의 주요 목표로 필요한 재료를 하이라이트 처리하면 지역 탐험 중 필요 재료를 확인할 수 있어 파밍의 편의도 늘어난다.

제로 시버트는 파밍 중심 게임의 하드코어 요소를 픽셀아트로 깔끔하게 담아냈다. 심지어 같은 지역으로 모험을 떠나도 알고리즘에 의해 매번 맵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장르 특유의 지루한 반복을 느낄 틈이 없다.

게임은 후반 콘텐츠부터 멀티 플레이까지 부족한 부분이 있으나 플레이 유저의 94%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다. 핵심인 하드코어 시스템에 경쟁력이 존재해 제로 시버트의 경쟁력을 만들고 있어 앞으로 게임의 완성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저작권자 © 게임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