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거시(Legacy). '유산'이라는 단어다. 선대로 물려받은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보통 이런 경우는 두 가지 뉘앙스를 지닌다. 하나는 대대로 이어가는 가치 있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케케묵은 것이라는 의미다.

모든 존재는 이름값을 하기 마련이다. 오스트리아의 개발사 소셜스필이 개발하고 넥슨이 서비스 중인 모바일게임 레거시 퀘스트(Legacy Quest)에서 기자는 레거시라는 단어가 주는 두 가지 느낌을 모두 느꼈다.

레거시 퀘스트는 하나의 가문을 만들고, 마법사, 궁수, 전사 등 3종의 캐릭터를 이용해 던전을 순차적으로 공략하며 아이템을 파밍하는 액션 RPG다. 한 가문에 속한 3종의 캐릭터 중 누구를 사용하고 육성할 것인지는 순전히 게이머 입맛에 달린 문제다. 가문을 만들고 이 가문 내에서 캐릭터들이 계속해서 대를 이어간다는 특이사항이 있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이 게임은 디아블로류의 핵앤슬래시와 파밍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게임이다.

핵앤슬래시 파트는 상당히 준수하다. 화려한 이펙트가 번쩍번쩍 튀고 캐릭터가 춤을 추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스타일의 액션은 아니지만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움직임은 게임의 액션성을 살리고 있다. 큐브 형태의 캐릭터들은 나름대로 다양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며, 오브젝트 파괴, 몬스터 사냥 시에 보여지는 연출도 큐브가 부서지는 형태로 그려져 나름의 박력을 보인다.

던전에서 유저를 방해하는 것은 트랩과 몬스터 등 2종이다. 스테이지의 트랩 배치와 몬스터의 공격 패턴은 제법 조화롭다. 이들의 조합은 유저에게 좀 더 높은 수준의 조작을 요구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적에게 달라붙어서 공격버튼만 연타하는 플레이를 지양하고 있다. 

자동 전투도 없기 때문에 과거에 휴대용 게임기로 액션 게임을 즐기던 느낌을 받게 된다. 강화니 진화니 이런 것 없이 순수하게 내가 캐릭터를 움직여 나를 공격해오는 적들을 물리치고 스테이지를 진행하며 더욱 강한 적들을 만나는 그런 게임들 말이다. 일반 스킬 2개와 궁극기 1개, 평타와 회피 등으로 진행되는 단순한 조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 내가 지금 액션을 하고 있다!' 는 느낌마저 받았다.

하지만 파밍 요소와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은 다소 느리고 투박하다. 우선 게임의 육성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이다. 국산 모바일게임이나 온라인게임의 육성 속도를 기대하면 안 될 정도로 말이다. 이 때문에 내 캐릭터가 변해가고 강해진다는 느낌이 가시적으로 빠르게 다가오지 않는다.

소셜스필과 넥슨이 그토록 강조했던 대를 이어 간다는 콘셉트는 캐릭터 사망 후에나 느껴진다. 캐릭터가 사망하게 되면 다른 능력치를 갖고 있는 동종 직업의 캐릭터가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그 뿐이다. 다시 키워야한다는 부담감만 생기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아이템이 준비되어 있기는 하다만... 편의성을 추구하다보니 정작 게임의 콘셉트가 흐려지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대를 이어간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아이템 시스템을 활용한 점은 재미있다. 이 아이템은 누가 언제 만든 것이다라는 기록이 각 아이템에 남는다. 하지만 아이템 거래 시스템이 없고, 멀티플레이 콘텐츠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템의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어봐여 유저에게는 와닿는게 없다. 어차피 내가 만든 아이템이라는 걸 유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아이템을 모아 DPS를 높이고 이 과정과 결과를 통해 내 캐릭터가 강해진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이런 류의 게임이 갖는 특징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 높은 스탯의 아이템을 얻기 위해 게이머들은 반복플레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레거시 퀘스트에서는 이런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손에 넣기 위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레거시 레벨이 16 이상이 되야 상위 난이도의 던전이 열리고, 여기서 상위 등급의 큐브나 아이템이 드랍된다. 그제서야 게이머가 만족할 수 있는 높은 성능과 등급의 아이템을 만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상위 아이템을 보여줄 순 없는 노릇이다. 게이머가 레벨을 높여 상위 던전에 도전하면 될 일이다. 레거시 레벨을 높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속도가 느리다.

느리게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 느낌이다. 본격적인 파밍의 재미를 느끼기엔 초반 구간이 지나치게 길게 설정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임 초반이 비교적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물론 이 구간을 지나치면 좀 더 큰 재미를 만날 수 있다. 상위 큐브조각을 모아서 이를 아이템으로 만들다보면 잭팟 터지듯이 높은 등급의 장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고, 열심히 살다보니 인생 한방의 순간을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레거시 퀘스트는 전통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액션과 초창기 파밍 RPG의 틀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게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러모로 이름값을 하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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