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누군가 '지금까지 즐긴 게임 중 가장 인상적이고 좋아하는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기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록맨 시리즈'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2013년에 실시됐던 마이티넘버9의 킥스타터 펀딩에 10만 원이라는 돈을 펀딩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캡콤이 사실상 포기한 프랜차이즈인 록맨의 정체성을 이 게임이 이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기대치로만 따지자면 여느 AAA급 게임 못지 않았던 마이티넘버9이 지난 6월 21일, PC, PS4, PS3, Xbox One, Wii U로 발매됐다. 하지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마이티넘버9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모습이다.

굳이 그래픽에 대한 혹평을 하지는 않겠다. 애초에 티저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몇 번씩이나 지적됐던 게임의 질 낮은 그래픽은 정식 출시 버전에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애초에 여러 번 인게임 그래픽이 공개된 덕분에 마이티넘버9의 그래픽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고 새삼스럽게 놀랄 일은 없을 듯 하다. 물론 콘셉트 아트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 때문에 '이거 펀딩 받으려고 사기 친 거 아니냐'는 불만을 여전히 하게 되지만 말이다.

최초 공개된 콘셉트 아트와 게임 그래픽이 다른 것은 이미 생활 속에서 라면 포장지의 조리예와 실제로 끓인 라면의 모습이 아예 다른 것을 목도하며 익숙해진 터다. 애초에 그래픽이 좋지 않더라도 록맨에서 보여줬던 훌륭한 레벨 디자인과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현대적인 기술과 접목해서 보여주기만 하면 그래픽이야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다.

문제는 게임플레이 측면에 있다. 이 게임은 대쉬와 점프를 통해 장애물을 넘고, 등장하는 적은 무기를 발사해 쓰러트리는 전형적인 횡스크롤 플랫폼 런앤건 장르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스테이지 마지막에 보스가 등장하고 이를 쓰러트리면 보스의 능력을 흡수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록맨의 특징과 일치한다.

마이티넘버9만의 차별점이라면 대쉬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에 있다. 일반적으로 대쉬는 일반적으로 지날 수 없는 장애물을 지나가거나, 이동에 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마이티넘버9에서는 공격의 일환으로 대쉬를 사용하게 된다.

적에게 무기를 발사해 대미지를 입히고, 적이 잠시 스턴 상태에 빠지면 대쉬로 마무리를 하게 되면 자원을 획득할 수 있다. 스턴 상태에 빠진 적을 대쉬로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냐에 따라 자원 획득량이 달라진다.

이렇게 자원을 획득하게 되면 캐릭터 성능에 잠깐씩 버프가 걸린다. 공격력, 방어력, 이동속도, 체력 증가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적을 빠르게 처리하면서 달려나갈수록 버프 효과를 끊이지 않고 누리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게임의 전개 속도를 자연스럽게 높이는 요소다.

사실 대쉬 시스템은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게임에 숙련될수록 좀 더 강해진 기분을 만끽할 수 있으며, 장르 특성상 2회차 요소가 부족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통해 타임어택을 하듯이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작자가 얼마나 오브젝트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장애물을 영리하게 설치해야 이런 대쉬 시스템와 보스 능력 시스템이 빛을 발할 수 있다. 또한 스테이지의 콘셉트에 걸맞게 적과 장애물을 디자인 하는 것도 유저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다.

마이티넘버9은 이런 점에서 실패한 게임이다. 몇몇 보스들의 디자인과 콘셉트는 인상적이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으며, 스테이지들 역시 대부분 대동소이한 콘셉트를 지니고 있다. 그래픽 뿐만 아니라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유저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실패한 셈이다.

3D를 기반으로 한 횡스크롤 게임이기에 캐릭터는 상하좌우로 단순하게 움직일지언정 이를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카메라 연출이 더해져 게임 내의 공간감을 넓히긴 했지만, 이는 90년대 초반 세가세턴, 플레이스테이션 시절의 나이츠나 바람의 크로노아 같은 작품에서도 볼 수 있던 연출이다.

록맨 시리즈가 인기를 끌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매 스테이지의 난이도 흐름이 굉장히 절묘했기 때문이다. 물론, 록맨2의 퀵맨 스테이지처럼 스테이지 전체를 프레임 단위로 암기를 해서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번 스테이지의 콘셉트를 명확히 보여주는 장애물을 초반에 배치하고, 유저가 캐릭터 콘셉트를 이해하게 될 즈음에 그 스테이지의 가장 어려운, 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넘어설 수 있는 장애물을 제대로 배치하는 식으로 밸런스를 맞췄던 것이 록맨 시리즈의 인기 요인이었다.

마이티넘버9의 레벨 디자인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록맨의 난이도 배치가 일렁이는 수면을 걷다가 어느 순간 높아진 파도와 자연스럽게 직면하는 느낌이었다면, 마이티넘버9의 난이도 배치는 평지를 걷다가 갑자기 솟아난 벽과 마주하게 되는 느낌을 준다. 즉, 유저 입장에선 '슬슬 달아오르는데?' 하는 느낌을 받는 게 아니라 '뭐야 이거?!' 하는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이티넘버9은 록맨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즐길만한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다. 가격도 스팀버전 기준 21,000원이니 고가의 게임은 아니다. 아마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서 즐겨볼만한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다'라는 표현이 이 게임에 내가 내릴 수 있는 최대의 호평이 아닐까?

하지만 이 게임을 록맨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발자인 이나후네 케이지가 대놓고 이 게임이 록맨의 정식 후속작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킥스타터 펀딩을 시작하며 '록맨 시리즈를 만들어달라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이야기를 했으니 사실상 이 게임을 이름만 다른 록맨 시리즈로 유저들은 인식해왔다.

애초에 마이티넘버9은 록맨 시리즈의 이름에 기댄 게임이기 때문에 이 정도 관심을 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 자꾸 록맨에 비교하느냐'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이 게임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게임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게임기를 끄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당시 내가 이 게임에 10만 원을 후원한 것은 이 게임을 10만 원의 가치를 지닌 게임으로 만들어달라는 뜻이 아니었다. 록맨 시리즈의 정식 계승작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였고,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런 마음으로 펀딩을 했을 것이다.

게임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실망스럽다. 하지만 더욱 속상한 것은 이러한 유저들의 마음에 대한 답변이 겨우 이정도라는 것이다. 개발진에 대한 불만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됐다. 록맨이라는 단어에 들떠 냉정하게 생각을 하지 못 한 내 잘못이라며 말이다. 마이티넘버9 덕분에 좀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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