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가 없을 만했다. 몇 번째 라그나로크인지 세기도 어렵다. 그중 원작을 좋아하는 유저를 온전히 만족시킬 작품이 없었다. 라그나로크 오리진 이전까지.

CBT부터 심상치 않았다. 처음 접속해 초반 퀘스트를 따라갈 때까지만 해도 수많은 MMORPG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콘텐츠가 하나씩 풀려나가자 개성은 점점 빛났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테스트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쉽고 다음 진행이 궁금해지는 게임은 오랜만이었다.

정식 출시에서 포인트는 명확했다. 과금모델이 게임성을 해치지 않을 것인지, 중반 이후 콘텐츠 밸런스는 괜찮을지, 스토리 몰입과 동기부여는 계속 이어질지, 그리고 서버 관리와 운영은 무난할 것인지. 서버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다.

스토리가 질과 양에서 모두 탁월하다. 물론 콘솔 대작들에 견줄 수는 없지만, 그동안 만나온 모바일 MMORPG 기준에서 가장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보여준다.

모험 초반에 어쌔신 '럭스'와 만나 거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로 인해 하얀 가면이 일으키는 사건과 엮이면서 왕실의 저주에 얽힌 반전을 풀어가는 플레이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아기자기한 그래픽에서 상상하지 못할 만큼 진지하고 어둡다. 주요 인물들의 생사도 담보하기 어려울 만큼 긴박한 전개다.

즐거운 동화적 분위기를 바라고 플레이하던 유저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취향이든 만족할 이야기와 콘텐츠는 곳곳에 배치된다. 서브퀘스트 역시 이야기에 충실하다. 퀘스트 종류에 따라 메인스토리의 이야기를 보완하기도 하고, 독립된 이야기로 유머나 힐링을 선사한다.

그만큼 아쉬운 점도 따라온다. 촘촘한 스토리에 걸맞게 스토리텔링 연출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면 완벽한 경험을 제공했을 것이다. 컷신과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양이 많은 편은 아니다. 이야기 흐름이 크게 요동치는 지점에서 텍트만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잦다. 스토리 밀도가 높다 보니 중요한 대사 몇을 지나칠 경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단단하게 잡힌 세계관과 스토리는 유저 동기부여와 연결된다. 퀘스트 외 플레이의 중심을 담당하는 콘텐츠는 파티플레이와 의뢰, 그리고 각종 던전들이다. 이 요소들은 모두 세계 속에서 각각의 필요성을 갖춘다.

자동사냥 피로도 2시간 제한이 전혀 압박이 아닌 이유는 수동 플레이 스타일이 매우 다채롭기 때문이다. 의뢰 퀘스트는 모든 종류가 각자 다른 게임방식을 취한다. 미니게임 수준의 컨트롤이 필요한 게페니아 유적이나 손재주 시험부터, 분수무도회처럼 프론테라 광장에 캐릭터를 세워놓기만 하고 휴식이나 수다를 즐기는 의뢰까지 등장한다.

파티플레이는 라그나로크 오리진의 후반 핵심 콘텐츠다. 그만큼 디테일까지 공들여 구성한 흔적이 보인다. 스토리 진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열리는 플레이 템포도 좋고, 던전 디자인과 보스 패턴도 적당히 캐주얼한 동시에 컨트롤의 재미를 살린다. 단체 콘텐츠를 꺼리는 유저도 스트레스 없이 간편하게 즐기기 좋다.

과금모델이 저렴해서 플레이가 더욱 쾌적하다. 블랙스미스 레벨 50까지 키우는 동안, 월정액에 해당하는 9,900원 카프라 회원권 외에 과금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여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봐야 매월 냥다래 프리미엄 실버(5,900원)나 골드(19,000원)를 구매하면 추가 과금할 상품이 마땅히 없을 정도다. 모바일 MMORPG에서 보기 드문 수준이다.

유료 재화인 냥다래 역시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극적으로 강해지는 개념이 아니다. 헤비 과금을 할 경우 카드와 코스튬 뽑기에 사용하는 추세인데, 스탯이 붙어 있긴 하지만 최상위 랭킹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닌 이상 필수가 될 만한 가성비가 아니다. 이벤트를 통한 냥다래 무료 증정도 있어 부족함이 없다.

용병 시스템 역시 편의성과 재미를 동시에 챙긴다. 유저의 동반자 요소를 또다른 과금모델로 활용한 게임들과 달리 인게임 주화만으로 간편하게 키울 수 있다. 다수의 용병을 직업별로 영입해 싱글 콘텐츠에 활용한다. 밸런스도 크게 무너지지 않아 자유로운 조합과 특성 선택이 가능하다. 용병 파티를 어떻게 구성하든 장단점은 존재한다.

용병을 향한 대우는 감성적으로도 만족스럽다. 각 캐릭터마다 개성과 사연이 있고, 영입 과정에서 고유 이야기를 가진다. 특히 마법사 용병 아유미의 영입 퀘스트는 잔잔한 감동까지 받을 정도다. NPC마다 개성을 부여하겠다는 사전 발언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가장 큰 단점은 텍스트에서 느껴지는 번역체다. 인물 대사에서 특히 크게 느껴진다. NPC 한 명이 반말, 존대, '~했소'체를 정신없이 오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기껏 스토리에 공을 들였는데 메인퀘스트 NPC가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으면 몰입도가 크게 깎일 법하다.

원작의 명곡을 어레인지한 OST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데, 그에 비해 효과음이 심심하고 투박한 느낌을 주는 것도 아쉽다. 전체적인 사운드 외에도 무기에 따른 타격음이나 몬스터의 피격음이 현실감이 떨어지고, 여러 소리가 맞물릴 때 깨지는 느낌도 받는다. 액션감이 떨어지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출시와 함께 불거진 서버 운영 문제도 당분간 안고 가야 할 문제다. DB 손실 오류는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수준의 사고였다. 며칠이 지난 뒤 진정된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점검이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되거나 정해진 시간에 어긋나는 사례가 종종 생긴다. 조금 더 명확히 공지하고 점검 시간을 준수해야 이미지 개선이 빠를 것이다.

13일 구글플레이 매출 4위,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출시 이후 일주일 내내 상승세를 보인다. 플레이를 해보면 이해하게 된다. 초기 시행착오를 거울 삼아 운영과 업데이트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최상위권 롱런은 충분하다. 게임으로서 즐길 만한 MMORPG는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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