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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승인 2012.11.09 17:14 | 수정 2012.11.09 17:14
병주고 약주는 라면파동
식약청이 병주고 약주는 데는 이골이 났다. 이번 발암물질 라면파동만 해도 그렇다. 국민식품이라는 라면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인데 식약청은 자세가 애매하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고 까다로운 대목이라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벌집 터트리듯 화를 자초할 수도 있기에 별일 없다는 식으로 대충 마무리 지을 셈인가 보다. 라면에서 검출됐다는 발암물질은 벤조피렌이다. 벤조피렌이 함유된 가쓰오부시를 스프의 재료로 쓴 일부 라면과 우동류가 문제가 된 것이다. 전체 라면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일 수 있으나 이미 시중에 유통된 것이 결코 적다고만 할 수도 없다. 이미 이 라면을 먹은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 뒤끝을 막으려는 듯 식약청은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제품 섭취로 인한 벤조피렌 노출량은 조리육류 노출량보다 1만6000배 낮은 안전한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사단은 한 중소업체가 공급하는 가쓰오부시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되면서 불거졌다. 벤조피렌은 1급 발암물질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이 불완전 연소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며 인체에 축적될 경우 암을 유발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벤조피렌이 함유된 가쓰오부시가 농심 등 라면제조업체에 납품돼 너구리라면 등의 스프를 만드는데 쓰였다. 함량이 많건 적건, 유해기준치를 초과하건 안하건 일단 라면에서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은 사실이다. 이언주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달 23일 식약청에서 제출받은 ‘가쓰오부시 분말 벤조피렌 시험 성적서’를 토대로 농심의 생생우동, 너구리라면 등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그러고 보면 식약청은 국민의 대표식품인 라면의 스프에 1급 발암물질이 함유될 가능성, 그리고 라면 제조과정에서 식품 기준규격에 부적합한 원료를 사용한 경우를 인지하고도 이 원료를 납품받아 스프를 만든 농심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이 의원은 “문제의 원료가 스프에 사용돼 생산과 출고를 중단하고 납품업체도 바꾸었다면 응당 해당원료가 사용된 제품도 자진 회수했어야 하는데 그동안 시간을 끈 것은 이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은폐하려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식품제조업체 측에서도 그들이 올바른 식품기업이라면 식품원료에 대해 비록 납품업체의 성적증명서가 있다 하더라도 직접 검사를 하는 등 관리를 철저히 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사실 소비자를 먼저 생각한다면 생산자가 문제의 제품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즉시 자진회수에 나섰어야 했다. 그럼에도 때를 놓쳐 소비자들을 불안케 만들었다. 식약청은 라면 스프를 포함한 가공식품에는 벤조피렌 기준치가 별도로 설정돼 있지 않아 해당 식품업체에 행정조치를 취할 명분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관련 30개 제품을 검사한 결과 벤조피렌이 0~4.7ppb로 미량 검출돼 안전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해당 제품 섭취로 인한 벤조피렌 노출량은 까맣게 탄 고기 한조각 보다 1만6000배 낮은 안전한 수준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어찌했건 이틀 뒤 식약청은 입장을 바꿔 관련 제품들을 회수키로 결정했다. 회수 결정을 내리면서 식약청은 “건강에 위해한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지만 국민적 염려를 감안해 나머지 제품을 회수키로 했다”며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식약청이 밝힌 자진회수 제품은 농심의 ‘얼큰한너구리’, ‘얼큰한너구리(멀티팩)’, ‘순한너구리’, ‘새우탕큰사발면’, ‘생생우동용기’, ‘생생우동’ 등 6개 제품과 동원홈푸드의 ‘동원생우동’, ‘해물맛분말스프’ 등 2개 제품, 그리고 ‘민푸드식품의 ’어묵맛조미’ 및 화미제당의 ‘가쓰오다시’ 등이다. 물론 이름을 밝힌 전제품을 회수하는 것은 아니고 불량원료가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제품의 유통기간을 보고 선별하게 된다. 1989년 11월에는 삼양라면의 ‘우지파동’으로 시끌벅적 했었다. 공업용 쇠고기 기름으로 라면을 튀겨낸다는 보도가 있은 후 전국에서 라면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라면공장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7년여에 걸친 소송 끝에 삼양라면이 혐의를 벗긴 했으나 그로 인한 타격이 컸다. 이같은 사회적 논란은 결과적으로 라면의 질을 향상시키는 부대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라면에 대해 소비자들이 얼마나 민감한가 하는 것은 이번 파동으로 불똥이 해외로  튄 것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대만에서 농심라면 긴급회수명령이 떨어졌고 중국이 수입산 농심라면에 대해 리콜을 요청했다. 홍콩에서는 서둘러 제품의 안전검사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무검출’로 발표됐다. 국민들은 식약청을 믿는다. 식약청이 먼저 내린 안전하다는 결정을 번복할 때는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근거가 따른다. 식약청이 병주고 약주며 우왕좌왕해선 안 된다. 앞으로도 유사한 위해성 판단사례가 나올 수 있다. 기준치가 정해지지 않은 식품의 위해성을 판단할 때는 확실한 과학적 근거로 안전성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myungw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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