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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승인 2014.08.28 15:22 | 수정 2014.08.28 15:22
안전을 벌써 잊었나
고사성어로 많이 인용되는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안전에 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손자(孫子) 구지편(九地篇)에 나오는 말로 “대저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게 되면 서로 돕기를 좌우의 손이 함께 협력하듯이 한다”고 한데서 비롯됐다. 서로 원수지간이면서도 안전이란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는 부득이 협력을 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춘추시대는 기원전 770~403년 제, 진, 초, 오, 월 5국이 대치하던 시대다. 제의 환공, 진의 문공, 초의 장왕, 오의 합려, 월의 구천 등 당시의 통치자들이 춘추오패라 불린다. 이 시대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오월동주’가 있다. 이 고사성어를 낳은 두나라 오와 월은 철천지 원수지간이다. 와신상담은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싸움에서 전해지는 고사다.   BC 496년 오나라의 왕 합려(闔閭)는 월나라로 쳐들어 갔다가 월왕 구천(勾踐)에게 패했다.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합려는 죽기 전 아들 부차(夫差)를 불러 원수를 갚으라고 유언한다. 왕위를 물려받은 부차는 마른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아버지의 원한을 되새긴다. 이때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 부차가 월을 치려 벼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오나라로 쳐들어 갔다. 그러나 결과는 월나라가 대패하면서 구천이 부차의 포로가 된다. 부차는 구천을 죽이는 대신 자신의 몸종으로 삼아 3년 동안 갖은 모욕과 수모를 견디게 한다. 구천은 부차의 변을 핥으면서 참고 참는다. 결국 월나라가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구천이 겨우 목숨을 건져 귀국한다. 돌아온 구천은 잠자리 옆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핥으며 자신을 채찍질한다. 마침내 구천이 다시 오나라를 정복하고 부차를 생포해 자살하게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이다. 여기서 고사성어 와신상담이 생겨났다. 와신과 상담은 따지자면 자신의 계발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극단의 수단이었다. 이 두나라의 관계는 그 후 오월동주의 이야기로 발전한다. 고사성어는 고사에서 연유한 말이라고 하지만 비유적으로 여러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다. 안전을 추구하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훗날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의 안전욕구가 그 어느때 보다 높아졌지만 국가의 안전기능은 오히려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세월호 참사는 그 무엇보다 국민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큰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후속 조치를 놓고 특별법 제정의 덫에 걸린 모양세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국회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일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재협상 결론을 내면서 국회는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국회가 제 구실을 못해서 국민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데, 그 원인이 세월호 문제 때문이라면 국민의 입장에선 세월호로 두번이나 고통을 받는 셈이다. 여당측에서는 세월호법의 정치적 이용을 배제하고 당장 급한 민생경제 법안을 처리하는 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세월호 특별법은 참사 발생과 수습 과정의 진상을 규명해서 유족의 슬픔을 달래고 다시 평상으로 복귀토록 하는데 근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특별법 제정을 놓고 여야가 정치공방을 벌이고 있으니 지켜보는 입장에서 국민들은 참으로 답답하다. 왜 세월호 참사의 후속조치가 정쟁의 제물이 되고 있는 것일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다루고 있는 국회를 보면 여기에서 이미 안전은 실종상태에 빠졌다. 세월호 특별법은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국민안전에 위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안 만드니 만도 못하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심어 놓은 상처가 얼마나 큰데 이를 정치적 이해의 인질로 삼으려 하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가 잘 수습돼 다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게 하는 반면교사가 돼야 할텐데 어쩌다가 본질에서 이렇게 비껴 나가고 있는지 안타깝다. 안전을 놓치면 그것이 사고를 부르고 또 참사로 이어진다. 세월호 참사를 눈으로 보고 또 봤으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안전에 까막눈인 것인가.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무섭다는 건 늘상 당해 보고서야 깨닫지만 또 금새 잊어버리고 마는 우리들이다. 한국인은 빛의 속도로망각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다 또 큰일을 부르는 게 아닌가 싶어 참으로 걱정스럽다. myungw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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