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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승인 2014.09.22 09:02 | 수정 2014.09.22 09:02
‘도모지’와 도무지 못고치는 병
우리말의 ‘도무지’는 주로 부정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이는 부사라고 국어사전에 풀이돼 있다. ‘아무리 해도’라든가 ‘도시(都是)ㆍ도통(都統)’ 등과 같은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안전불감증은 도무지 고칠 수 없는 병인가. 최근 고강도 극한 훈련에 나선 특수부대원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수특전여단 예하 부대에서 포로체험훈련을 받던 하사 2명이 숨지고 1명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사망원인은 질식사로 추정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훈련은 포로로 붙잡힌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팔을 뒤로 결박당한 채 천으로 만든 두건을 머리에 쓰고 1시간 이상 버티는 극기훈련이었다고 한다. 포로체험훈련은 미국에서 올해 처음 국내로 들여온 프로그램으로 미국이나 영국, 호주의 특수전 부대에서 전쟁 중 적군에 포로로 붙잡혔을 경우 고문 등에 대비해 실시하는 훈련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 적용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인데 이번 사고 정황을 보면 이 역시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알려진 바로는 “실제 포로의 경우처럼 천으로 만든 주머니를 머리에 쓴 채 포로 결박훈련을 하다가 호흡곤란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강도가 매우 높고 위험한 훈련인데 그럴수록 안전을 고려하고 적절한 통제 속에서 훈련을 진행했어야 할 것이다. 군대훈련에는 안전이 없는 것인가. 이번 사고를 보고 생각나는 것이 도무지의 어원이다. 도무지란 말의 어원은 ‘도모지(塗貌紙)’라고 한다. 이 도모지가 지금의 도무지란 말이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도모지는 아주 끔찍한 말이다. 도모지의 생성시기는 조선시대 1860년경 철종 말기쯤으로 당시 사사로이 행해졌던 형벌의 하나였다 한다. 손을 뒤로 묶어 놓고 물을 묻힌 한지를 얼굴에 몇겹으로 착착 발라 놓으면 종이의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서서히 죽게 되는 형벌이다. 이 도모지는 천주교도들을 탄압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체포된 오치문이란 사람이 도모지형을 당했다고 하는데 천주교 기록에 “순교 당시 그는 얼굴을 한지로 덮은 채 물을 뿌림으로써 숨이 막혀 죽게 하는 백지사(白紙死, 일명 도모지) 형벌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 이 무렵 남한산성의 광주 유수는 잡혀온 천주교인들에게 일명 도배형 또는 도모지라고 부르던 백지사형을 집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말기의 우국지사이며 지식인이었던 황현(黃玹) 선생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도 도모지 얘기가 나온다. “대원군 시대에 포도청의 형졸들이 살인하기에 염증을 느껴 백지 한장을 죄수의 얼굴에 붙이고 물을 뿌리면 죄수의 숨이 막혀 죽곤 했는데 이를 도모지라 한다고 했다. 형벌의 성격상 도모지는 가문에서 사형(私刑)으로 집행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 희생자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끔찍한 형벌인 ‘도모지’에 어원을 두고 있는 ‘도무지’는 그래서 그 형벌만큼이나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번 포로훈련 사고가 이 도모지를 연상시키는 것은 두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질식이 일어나는 경위가 이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한 훈련을 실행함에 있어 안전을 소홀히 했다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안전불감증이다. 이 안전불감증이 끔찍한 사고를 일으킨다. 전 국민을 격분시키고 두렵게 한 윤일병 폭행사건도 끝내는 살인죄가 적용됐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 끔찍한 사단의 시발도 안전불감증 때문이었다. 자신의 안전조차 모르니 남의 안전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군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왜 안전을 따지지 않는가. 군은 안전과 관계가 없다는 것인가. 군처럼 안전이 중요한 곳도 없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울산에서 한 여학생이 유서를 써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서에는 가해자의 이름이 기록돼 있었고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두려웠으며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에 대한 한을 남겼다. 군이나 학교와 같은 곳에서의 집단폭행은 비열하고 잔인한 특성을 갖고 있다. 오로지 자신만의 욕구 충족과 변칙적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안전을 외면하는 것이다. 안전하지 않은 곳에 누가 자녀를 안심하고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책임을 지는 것이 국가요, 정부다. 그 누구건 국민이 안전을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국민안전대책을 다시 한번 확실히 점검해 주기 바란다. 안전불감증은 우리가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병인가’ 하는 자탄이 나와서는 절대 안된다. myungw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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