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를 끝으로 마블 스튜디오의 부흥을 이끌고 히어로 무비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 1이 끝나고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포문을 연건 무려 다섯명의 히어로가 바글바글 뛰어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입니다.

*이하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는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가 늘 그렇듯 단순하고, 진부하다면 진부합니다. 토르-어벤저스에서 등장한 테서렉트와 같이 강력한 힘을 가진 인피니티 스톤을 둘러싸고 히어로들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죠. 무엇이든 훔치는 도둑 집단 레베져의 자칭 ‘스타로드’ 피터 퀼(크리스 프렛 분)은 인피니티 스톤이 담긴 오브를 훔치지만 스승이자 레베져의 리더인 욘두를 배신하고 직접 그걸 되팔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욘두가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고, 소식을 듣고 현상금 사냥꾼 너구리 로켓(브래들리 쿠퍼가 목소리를 연기했죠. 그리고 사실 너구리가 아니고 기계와 생체를 이어붙인 ‘누구와도 다른’ 존재입니다.)과 그의 애완 나무 그루트(빈 디젤이 목소리를 연기했습니다.)가 그의 뒤를 쫓게 됩니다.

또한 인피니티 스톤을 타노스에게 바치고 행성 잔다르를 파괴하려 하는 로난이라는 악당이 보낸, 타노스의 딸 가모라 역시 그의 뒤를 뒤쫓습니다. 하지만 잔다르의 시내에서 난투극을 벌이던 넷은 결국 노바 군단에게 붙잡혀 감옥 킬른에 수감됩니다. 그곳에서 로난에게 가족을 잃고 원한을 품은 디스트로이어(데이브 바티스타 분)와 가모라가 한차례 드잡이를 하지만, 스타로드의 입담으로 로난을 없애기 위해 일행에 합류합니다. 인피니티 스톤을 팔고 로난에게 원한을 갚기 위해 의기투합한 다섯명(세명과 한마리와 한그루라고 해야할까요...)은 그것을 둘러싼 각종 위험에 휩쓸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루저로 살며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우정을 깨닫게 되죠.

결국 로난이 스톤을 얻어 잔다르를 파괴하기 직전에 다다르자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의미있는 일을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스타로드의 진심어린 설득에 몸을 던져 로난에게 대항하게 됩니다. 그리곤 한때 적이었던 노바 군단과 합세하여 간신히 잔다르를 지키고 인피니티 스톤을 회수하게 되죠. 써놓고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첫번째 시즌의 영화들을 정리해보자면, 어벤저스 이전의 영화들은 머리는 텅텅 비고 센스도, 유머도 없지만 외모는 그야말로 빛이 나는 미남을 연상시킵니다. 그나마 아이언맨의 캐릭터로 근근히 연명하는 수준이었죠.(그나마도 아이언맨2에선 끔찍했습니다.) 위기를 느낀 마블 스튜디오는 캐릭터 궁합을 맞추는데 일가견이 있는 조스 웨던 감독을 영입했고 본격적으로 어벤저스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그리고 아시는 바대로 어벤져스는 저 히어로 무비의 ‘히어로’이자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여겨지는 ‘다크나이트’에 필적하는 대단한 성공을 이뤄냅니다.(작품성은 둘째로 치겠습니다.) 각자 색깔이 튀어도 너무 튀는 캐릭터들이 한 무더기로 나오는 데도 누구 하나 색이 바래지 않는 절묘한 궁합으로, 시종일관 우울한 DC사의 히어로를 비웃듯 한 순간도 유머감각을 놓지 않으면서 말이죠. 게다가 헐리웃 거대 자본이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노련한 CG는 그야말로 내 눈 앞에 히어로들이 날아다닌데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멋들어지게 그것을 이루어냈습니다.

그 후로 페이즈 1을 마무리 짓는 세편의 영화 아이언맨3, 토르 : 다크월드,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 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감독의 역량과 스튜디오의 치밀함, 그리고 역사 깊은 캐릭터의 매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이제 깨달았다는 것을 선포하듯이 말이죠. 특히 아이언맨3와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는 캐릭터의 히스토리와 환경, 성격을 영화 전반에 투영시켜 단일 히어로 작품의 장르영화화를 꾀했고, 그 판단은 매우 유효했습니다.

그리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이르러 그들은 감독의 역량을 스튜디오의 그것보다 전면에 내걸기 시작했습니다. (오프닝 크레딧에서 제임스 건 감독의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하죠.) 또한 80년대 팝송을 테이프로 들으며 (그것도 우주의 이름 모를 행성에서!) 춤을 추는 주인공과 함께 제목을 띄우며 ‘우리는 유쾌하다!’라고 선전포고를 하듯이 시작합니다. 최근 공개된 DC사의 배트맨V슈퍼맨의 암울한 분위기와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자세기도 합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러닝타임 내내 이런 마블 사의 새로운 모토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습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화려하고 덜 떨어지고 무게를 잡다가도 바로 낄낄거리는 히어로들을 데리고 말이죠. 히어로 무비의 안티테제 마치 디즈니 영화의 대척점에 있는 ‘슈렉’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로서 사명을 품고 왔다는 듯한 태도지만, 그러면서도 히어로 영화의 공식엔 여전히 충실합니다.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루저라고 칭하면서도 착한 일 한번 해보겠다고 목숨을 거는 것과도 묘하게 겹치는 태도입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용과 형식의 혼연일체라고 할까요.

시리즈의 첫편부터 다섯명이나 되는 히어로가 나오기에, 영화는 캐릭터의 매력을 잃지 않기 위해 과거에 대한 구질구질한 설명은 최소화 시키고 영화 내에서의 행동을 통해 관객이 매력을 느끼게끔 만듭니다. 호감이 가는 이성이 구구절절하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고 눈 앞에서 보이는 행동으로 사랑을 얻으려는 것처럼 말이죠. 사전지식이 없이는 배경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조절했다고 봅니다.

진부한 이야기 진행 속에서도 그것을 생동감 넘치게 하는건 앞서 말한 캐릭터들의 매력 외에도, 진일보한 스크린플레이와 사운드도 한 몫 합니다. 제임스 건 감독이 영화 내적으로 음악의 역할이 상당하기 때문에(주인공 스타로드가 자신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Awesome Mix VOL.1 테이프에 엄청나게 집착하고, 대부분의 배경음악도 실제로 영화 내에서 이 테잎을 통해 재생됩니다.) 촬영 전 미리 음악감독에게 작업을 끝마쳐 줄 것을 의뢰했다고 하는데, 영화 내내 흥을 제대로 돋우게 합니다. 거기에 우주로 나간 첫 시리즈인만큼 사건이 벌어지는 각 장소에 대한 디자인도 상당히 공을 들였습니다. 함선들의 디자인도 마찬가지구요. 상당히 기발한 디자인이 많아 마치 길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페이즈 2의 시작으로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아주 산뜻하게,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아주 성공적으로 신호탄을 쏴 올렸습니다. 단순히 시리즈의 교두보 역할이 아닌 하나의 완결된 영화로서 단일한 매력도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을 즐겁고 유쾌하게 만듭니다. 그게 어떤 요소의 집합이라든지 어떤 계산과 자본을 통해 나왔던지, 이후의 시리즈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영화 내내 주인공들과 낄낄대고 때론 어울리지 않게 찡한 감동까지 주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보고나서, 적어도 마블 스튜디오가 자신의 캐릭터들을 조금 더 사랑하기로 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땀나게 뛰어다니는 다섯 히어로를 관객들이 이렇게 애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어른들도 어린아이처럼 두근대며 이 진부하다 못해 시작한지 5분이면 결말이 예상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울고 웃게 만들 수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근래의 헐리우드는, 그 자본의 거대함 때문에 비난 받는 것과는 별개로 영화의 본질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에 한발짝 더 다가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벌써부터 내년에 개봉할 앤트맨과 두번째 어벤져스가 기다려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였습니다.

- 마지막 쿠키에 나오는 하드보일드한 오리는 실제로 마블사의 캐릭터인 ‘하워드 덕’입니다. 아무런 초인적 능력도 없는 단순히 외계에서 지구로 불시착한 말할 수 있는 오리죠. 실제로 시리즈로 만들어질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페이즈 2의 성격을 상징하는 등장이 아닌가 싶습니다.(조스 웨던 감독은 이 오리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농을 하기도…) 아, 그리고 헬멧을 쓴 멍멍이 역시 마블의 캐릭터입니다. 코믹스에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합니다.(…)

- 스타로드 역의 크리스 프랫은 놀랍게도 영화 ‘그녀’에서 테오도르와 더블 데이트를 하는 회사 동료를 연기한 바로 그사람입니다! 이 영화를 위해 28kg을 감량했다고 하는군요. (인터뷰에서 고문과도 같은 시간이었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죠.) 제임스 건 감독이 ‘제로 다크 서티’의 그를 보고 스타로드 역을 제안 했고 6개월만 주면 스타로드의 몸을 만들 수 있다고 하여 성사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헐리우드의 입금 파워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 이해웅(http://yarkteim.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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