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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피지컬'과 '뇌지컬'은 실제로 존재할까?
길용찬 기자 | 승인 2018.12.07 10:02

최근 판교를 돌아다니면 배틀라이트 광고판이 종종 보인다. 스웨덴의 스턴락 스튜디오가 개발하고 넥슨이 5일 정식으로 국내에 출시한 액션게임이다. '모든 순간이 액션이다'라는 슬로건과 오직 ‘피지컬만 있으면 된다’는 등의 설명 문구.

거기서 의문이 떠올랐다. 피지컬은 과연 무엇이고, 게임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피지컬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순간을 되새겨보기로 했다.

스포츠에서 피지컬과 로지컬이 언급되듯, e스포츠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운동선수에게 많이 써온 말이다. 달리기나 반응속도, 순발력, 몸싸움과 내구력 등 신체능력을 뜻한다. 한국에서 피지컬 개념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시절로 추정된다. 임요환으로 대표되는 컨트롤과 전략의 시대가 한 걸음 밀려나고 이윤열이나 최연성 등 물량의 시대가 오면서, 한결 뛰어난 손 빠르기로 전투를 지배하는 피지컬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적 개념으로 '로지컬'도 따라왔다. 로지컬은 이후 언어의 직관성이라는 명분 아래 신조어 '뇌지컬'로 퍼지게 된다. 주로 손을 쓰느냐, 머리를 쓰느냐의 차이다.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컨트롤이나 물량이나 멀티태스킹은 피지컬, 전략이나 운영이나 빌드 심리전은 뇌지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은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개념이다. 전성기 임요환의 컨트롤은 대단했지만 물량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임요환은 피지컬이 좋은 선수였을까? 인간 손의 한계는 존재하고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스타크래프트의 피지컬은 손의 한계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분배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후반기 이영호와 이제동처럼 그 효율을 최적화시킨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판이 뒤바뀌기도 했다.

게임이 발전할수록 유저가 일일이 손으로 처리하던 인터페이스가 간소화되었다. RTS 장르가 딜레마에 빠진 이유이기도 했다. 피지컬 비중을 그대로 놔두면 시대에 뒤떨어지며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비중을 낮추면 기존 유저들이 매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 시점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대세가 된 것이 바로 MOBA, 혹은 AOS 장르였다.

하스스톤에서 소위 '사기'를 칠 때의 쾌감은 뇌지컬에서 나온다

뇌지컬 100%인 게임은 분명 존재한다. 턴제 게임이 그렇다. 하스스톤은 반농담 삼아 험상궂은 손님덱 시절이나 발라당 사제덱처럼 피지컬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뇌지컬과 운에 달린 게임이다. 그럼 피지컬이 100%인 게임도 있을까?

월드오브워크래프트처럼 탱/딜/힐이 구분되는 MMORPG를 가정해보자. 딜러에게 피지컬이 많이 필요하다고 얼핏 생각하기 쉽지만, 딜사이클이라고 불리는 스킬 활용 메커니즘은 의외로 뇌지컬의 영역에서 돌아간다. 버튼을 빠르게 누르는 것보다 변수가 발생할 때 어떤 버튼을 누를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할 뿐. 소위 '폭딜'을 넣을 타이밍을 포착하는 것 역시 순수하게 두뇌의 역할이다.

힐러야말로 피지컬이 중요하다. 실력이 뛰어난 힐러는 대개 손이 빠르다. 위험한 파티원을 멀리서도 포착하는 시야와, 빠르고 정확하게 스킬을 넣어주는 반응속도가 요구된다. 스스로 바닥을 피하는 동시에 바닥을 못 피하는 파티원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게임의 초심자에게 플레이하기 쉽다면서 힐러를 추천하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초행길이라도 기본기가 받쳐준다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역할이 힐러다. 대신 시야가 좁고 손이 느린 힐러는 택틱을 숙지해도 큰 활약이 어렵다.

뇌지컬이 모든 것을 가르는 역할은 탱커다. 탱커 플레이를 해본 유저는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버튼을 빠르게 이것저것 누를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어떤 역할보다 공략 숙지가 철저해야 한다. 지금 패턴에서 보스를 어떻게 유인해야 하는지, 내 자리는 어디인지, 어그로 인계 타이밍은 언제인지 등. 거기에 책임도 막중해서 정신적으로 매우 피로한 역할로 꼽힌다.

올해 출시된 걸작 플랫포머 셀레스테, 유저의 피지컬을 시험한다

그렇다면 가장 피지컬 비중이 높은 장르는 무엇일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FPS다. '샷빨'은 순수하게 피지컬이니까. 하지만 FPS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맵 숙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험과 위치 선정을 무시하지 못한다. 피지컬 측정기라는 인식이 강한 다크소울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은 레벨과 장비 파밍에 따라 난이도가 크게 갈리는 게임이다. 다회차 플레이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피지컬 비중이 100%에 무한 수렴하는 게임으로는 플랫포머 장르를 꼽을 수 있다. 슈퍼미트보이나 아이워너비더보시, 최근 호평받은 셀레스테(Celeste) 등. 모든 패턴을 알고 있어도 손가락이 단련되기 전에는 벗어날 수 없다. 물론 판단도 중요하지만 가장 비중이 적은 장르다. 항아리 게임은 어디까지나 유사게임이니 제외하자. 절대 직접 해보다가 화가 나서 그런 것이 맞다.

따지고 보면 100% 피지컬인데, 아니 그러니까 이게 게임이냐고요

이야기는 다시 배틀라이트로 돌아온다. 하나는 확실하다. 동종 장르 게임 중 가장 피지컬 의존도가 높은 게임이다. 아이템, 레벨, 공성 모두 없다. 오브젝트는 중앙에 나오는 오브 하나와 회복 포인트가 전부다. 결정적으로, 모든 기술이 논타겟팅이다. 평타마저도. 자기의 손만 뛰어나다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역전할 수 있는 게임이 맞다.

그렇다고 오직 피지컬로 모두 해결되느냐, 그렇지 않다. MOBA 장르가 가지는 태생적 특징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다양한 챔피언의 스킬을 이해할수록 승률은 올라간다. 물론 엄청난 반응 속도를 가진 유저라면 처음 보는 스킬마저 다 피하면서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손가락을 가질 경우 많이 해보고, 더 침착하고, 더 판단이 좋은 유저가 승리할 것이다.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게임의 생명력을 높이는 'Easy to Learn, Hard to Master' 요소다. 정말 피지컬이 전부였다면 배틀라이트는 호평받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게임은 머리를 사용한다. 그 지점에서 게임의 참 재미가 나오고 숙련의 맛이 나온다. 항아리 게임 빼고.

대부분 게임에서 피지컬과 뇌지컬은 함께 시너지를 낸다, 스킬 예측샷처럼

피지컬과 뇌지컬은 구분 자체가 모호하다. 시간이 더 흐르면 둘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등장해 정착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둘 모두 게임의 본질이라는 것.

손을 움직이는 맛과 머리를 쓰는 맛은 실력이 좋을수록 성취감을 느끼면서, 실력과 무관하게 게임에 빠지는 이유가 된다. 게임 의도에 맞게 두 요소를 버무린 게임을 맛보는 일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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