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티지’(Prestige).

얼마 전까지만 해도 냉정하고 합리적인 리그오브레전드 유저라 자부하는 입장에서 나와 관계없는 단어라 생각했다. 실질적인 능력치 상승이나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스킨에 프레스티지라는 단어가 붙었다고 한들 실력이 좋아지냐며 조소한 때도 많았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이사부터 아칼리까지 ‘K/DA 프레스티지 스킨’ 2종을 모두 수집하고 만족스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스트아크부터 블레이드앤소울 레볼루션까지 플레이해야 할 게임들도 많았지만 스킨을 처음 본 순간 ‘반지의 제왕’의 골룸처럼 잠을 줄이면서까지 수집에 몰입했다.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당시 K/DA 카이사 프레스티지 에디션 스킨은 높은 수준의 스킬 효과와 함께 독특한 습득 방식으로 유저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일정 확률로 스킨 재조합 혹은 마법공학 상자로도 얻을 수 있었지만 월드 챔피언십 이벤트에서 얻을 수 있는 챔피언십 토큰 2,500개로 확정 교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참여 방식이 게임 플레이로 이어지자, 라이엇게임즈는 카이사에 이은 'K/DA 아칼리 프레스티지 에디션'으로 유저들의 ‘2018 눈맞이 축제’의 참여를 독려했다. 일일 퀘스트, 플레이 보상 등으로 제공되는 ‘눈송이 토큰’ 1,800개로 스킨을 얻거나 250개로 ‘서리검 이렐리아’, ‘눈꽃 시비르’ 등의 황금 크로마를 습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1,800개의 토큰을 모으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지난달 7일부터 1월 8일까지, 약 한 달간 진행되는 이벤트 기간 내에 모으려면 매일 60개 이상의 코인을 모아야 했다. 게다가 아무리 프리시즌 이후 게임 템포가 빨라졌다 한들, AOS 장르 특유의 긴 게임 호흡으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때문에 이전 월드 챔피언십 이벤트처럼 토큰 150개와 첫 승리 퀘스트, PvP 모드 플레이 시 추가 토큰을 무한정 제공하는 ‘눈맞이 패스’의 구매는 필수적이었다. 라이엇게임즈에서 밝힌 일일 임무로 제공하는 토큰은 총 325개로 패스 구매 시 제공하는 150개, 그리고 1개월의 일일 첫 승리 퀘스트 보상을 더해, 대략 약 700개 이상의 토큰을 플레이로 모아야 했다. 

무엇보다 이벤트 시기가 문제였다. 비교적 한가로운 학생 시절이었다면 모를까 졸업 이후 각자의 사정으로 연말에 밀려난 송년회로 인해 하루 할당량을 채우기 다소 버거운 감이 없지 않았다. 종종 아군 팀원들에게 민폐인 ‘음주롤’을 감행하면서까지 토큰 수집에 몰두했을 때 ‘자기계발에 이정도 노력을 투자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에 다소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기존 리그오브레전드에 익숙한 유저라면 ‘소환사의협곡’ 모드를 선택해 플레이했겠지만 프레스티지 스킨을 노리는 유저에게 ‘돌격!넥서스’ 모드의 뛰어난 가성비는 매력적이었다. 모든 챔피언이 개방돼 전술적으로 자유롭고 무엇보다 최대 21분을 넘지 않는 짧은 플레이 시간은 일일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유저에게 필요한 특징 중 하나였다. 

실제로 40분 이상 걸린 소환사의 협곡 경기에서 패배했을 때의 토큰 보상은 20분 미만 승리를 받아낸 돌격!넥서스 보상보다 부족해, 라이트 유저가 감당하기에 많은 플레이 시간을 필요로 했다. 또한 눈송이 토큰과 함께 제공되는 ‘넥서스 토큰’으로 돌격!넥서스 모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효과를 교환할 수 있어 보상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랭크 배치 게임도 마치지 않은 채 돌격!넥서스만 플레이하다보니 나름의 메타와 밴픽 구도를 어떠한 조언 없이 파악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빠른 성장으로 소위 ‘왕귀(왕의귀환)’ 타이밍을 대폭 줄이는 ‘마스터 이’나 한 타에 최적화된 이니시에이팅과 폭딜을 선보이는 보이는 ‘파이크’ 등은 많은 유저들이 선택하는 필밴 카드 중 하나로서 자리 잡은 상황이다.

다만 스킨을 얻기 위한 여정은 일정에 비해 다소 빠듯해, 부담감이 느껴졌다. 물론 스킨의 가치와 희소성을 따진다면 눈맞이 패스 구매 비용과 플레이 타임이 아깝지 않지만 개인 일정으로 토큰 수급을 하루 놓치게 될 경우, 이후 일일 토큰 할당량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러한 경우 ‘코인을 모은다’기보다 빚을 갚는다는 느낌마저 들어 즐거움보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러한 이유로 1,800개를 모두 모았을 때 ‘벌써 다 모았네’가 아닌 ‘드디어 다 모았다’라고 외친 부분은 이번 ‘프레스티지 작전’의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기간이 한정적이다 보니 쫓기듯 플레이한 감이 없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해 조합과 상관없는 챔피언을 선택한 경우도 있어 개운치 못한 뒷맛을 느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얻은 스킨이라 그런 걸까. 아쉬움은 ‘오연투척검’과 귀환 모션으로 날아갔으며 ‘무결처형’ 시 바닥에 새겨지는 황금빛 ‘K/DA’로고는 기쁨으로 돌아왔다. 원작 K/DA 콘셉트 스킨이 전체적으로 보랏빛 계열이 강했다면 프레스티지 에디션은 황금색 그래픽 효과로 기존 스킨과 차별화했다. 

이번 눈맞이 축제는 신규 실험 모드의 ‘가능성’을 확인한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스티지 스킨을 통해 많은 유저가 돌격!넥서스 테스트에 참여했고 이는 새로운 OP 챔피언의 발굴과 메타 정립으로 연결됐다. 특히, 게임의 부가적 요소인 스킨을 활용해 신규 모드 플레이를 자연스럽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온라인게임뿐만 아니라 모바일 역시 참고할만한 홍보 방식을 보여줬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떠나, 프레스티지가 상징하는 위신과 명망을 두르는데 성공한 유저로서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과 자부심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팬 활동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한다’라는 문장을 이토록 체감한 적도 없었다. 토큰을 수집하는데 많은 노고와 시간을 투자한 만큼 부디 다음 패치에서 하향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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