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네오플에 이어 2월 넥슨이 포괄임금제 폐지에 서명했다. 넥슨 노조 '스타팅포인트' 출범 후 약 5개월 만의 성과다.

1월 말 민주노총 화섬노조 넥슨 지회 네오플 분회는 네오플과의 교섭 끝에 포괄임금제 폐지, 유연근무제도 개선, 복리후생과 모성보호 확대 등 사안에 합의를 이루었다. 게임업계 최초의 노조가 최초의 노사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2월 26일, 넥슨 역시 복지와 근로환경 단체협약에 잠정 합의했다. 포괄임금제 폐지와 전환배치 제도 개선, 유연근무제 개선 등 79개 조항이 해당되며 조합원 찬반투표 후 최종 협약이 체결된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포괄임금제 폐지 흐름은 갈수록 강풍이 되고 있다. 국내 대부분 업계가 포괄임금제를 붙들고 있는 것에 비해 아직 느리지만 확실히 성과를 내고 있다.

2018년 가을은 게임계 종사자들이 기억할 만한 시기다. 9월 넥슨 노조 '스타팅포인트'가 출범하면서 게임업계 최초 노조로 이름을 올렸고, 불과 며칠 뒤 스마일게이트 직원들이 노조 'SG길드' 설립을 발표하면서 발을 맞췄다. 이어 10월은 카카오 노조 '크루 유니언'이 설립되어 자회사인 카카오게임즈도 영향권에 들게 됐다.

포괄임금제는 이들 노조가 하나같이 가장 먼저 입에 올린 단어다. 넥슨 노조는 설립과 동시에 1차 활동목표로 포괄임금제 폐지를 명시했으며, 카카오 노조 역시 주요 설립 이유로 포괄임금제를 꼽았다.

포괄임금제는 기본 임금에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 야간, 휴일 업무 수당을 미리 포함해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원칙은 추가근무수당을 정확히 집계하기 어려운 업종의 사정을 고려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실제는 업종 불문 많은 기업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해왔다.

간단히 예를 들어서, 월 기본급 200만원에 시간당 2만원 야근수당을 받는 직장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월 30시간 야근할 경우 총 월급은 260만원이 된다. 그러나 포괄임금제가 존재해서 수당 포함 급여를 220만원으로 산정했다면 매달 40만원을 못 받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 크게 2개 이득이 생긴다. 첫째로 임금 계산이 편리하며, 둘째로 과중한 업무를 맡겨도 부담이 없다. 직원이 야근을 더 하더라도 지출은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곧 인건비 절감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포괄임금제는 게임계를 떠나 국내 다양한 산업에서 화두로 떠오른 상태다. 포괄임금제 오·남용 현상을 규제하려는 정부 움직임이 관측되면서 정계와 재계 사이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재계 반발도 만만치 않다. 산업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정확한 근무시간을 책정하기 어렵다는 명분이다. 특히 제조업과 중공업 등 블루칼라(Blue-collar) 직종에서 포괄임금제만큼은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게임사는 포괄임금제를 유지할 명분이 적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전체의 특징이지만, 그중에서도 게임산업은 손꼽힐 정도로 근로시간 산정이 쉬운 곳이다. 거의 모든 업무가 PC 앞에서 이루어지며, 작업 내용도 대부분 로그 시간을 그대로 남길 수 있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초 단위로 기록이 저장되는 시스템 구축이 충분히 가능한데 근로시간 관리를 하지 못한다면 기업에 책임이 돌아간다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외부 활동이 잦은 영업직이나 창조적 창작 활동이 중요한 일부 팀은 포괄임금제를 적용할 수 있겠지만, 어느 쪽이 예외일지는 구별하기 어렵지 않다.

대형 게임사들이 성장에 비해 추가 일자리 창출이 적었다는 점 역시 제도 개선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양극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대형 게임사들이 중소 업체와 매출 차이를 더욱 벌리는 와중에도, 고용 비중은 큰 변화가 없었다.

2018년 상반기 기준 게임산업 전체 종사자 대비 상장사 종사자 비중은 14%에 불과했다. 늘어난 매출과 규모에 비해 인력 충원이 부족하고, 기존 인력에 더 많은 부담을 지워 인건비를 절감한 결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2017년 지상파 탐사보도에 등장하기도 한 게임계 과로사 문제 (자료제공: SBS)
2017년 지상파 탐사보도에 등장하기도 한 게임계 과로사 문제 (자료제공: SBS)

포괄임금제 폐지 움직임은 2018년 7월부터 시작된 '주 52시간 근무' 시대와 맞닿아 있다. 펄어비스, 웹젠, 위메이드 계열사 등 많은 게임사들이 이 시기에 사측 주도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EA코리아도 올해 1월 폐지를 결정하는 등 포괄임금제 폐지 물결은 여러 갈래에서 뻗어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사측 역시 계산기를 돌린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포괄임금제는 야근을 기본 책정해 수당에 포함하므로, 주 52시간이 강제된 이상 포괄임금제로 인건비 차익을 크게 볼 수 없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대부분의 게임사는 임직원 기존 연봉을 삭감 없이 기본급으로 전환했다. 이 경우 폐지 이전 받던 봉급은 보장되고 추가 근무에 따른 수당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젊은 세대에서 일과 삶의 조화 '워라밸'을 추구하는 분위기로 흐르고, 이런 요구를 반영한 사내 복지의 일부분인 것으로 풀이된다.

아직 포괄임금제가 존재하는 유명 게임사의 한 개발자는 "넥슨 소식이 전해지면서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대화 소재로 언급되고 있다"면서, "아예 포괄임금제 개념 자체를 잘 모르던 직원들도 의외로 많아서 공론화가 될수록 폐지 목소리가 강해질 것"이라고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게임업계에 불러온 바람은 결코 작지 않다. 주요 업체들은 각종 방안을 연구하면서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직접 선택하는 탄력근무제, 안식월 및 안식년 제도 등은 이제 낯설지 않은 개념이다.

직원 300인 미만 사업장에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 것은 2021년이다. 게임계 근로 환경은 이 시기에 두 번째 파도가 몰려올 전망이다. 더 많은 비중의 게임계 종사자가 여기에 해당하며, 대형 게임사의 사례처럼 제도 확대와 연관지어 환경 개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ICT 업계는 여러 산업 중에서도 새로운 기술과 환경을 표방한다. 그중에서도 게임 분야는 가장 젊은 분야다. 근무 환경과 삶의 질이 화두로 떠오르는 동시에 빠른 속도로 관련 요구가 늘어나는 모습은 그동안 업계 종사자들이 겪은 고충을 짐작케 한다.

게임계는 야근과 과로의 아이콘이었다. 2017년까지 게임 개발자의 과로사 사건이 뉴스에 오르내렸고, 몇몇 기업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등대'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저는 게임 개발자입니다" 로 시작하는 모든 글에 눈물이 섞이는 시기가 있었다.

게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다. '사람이 일할 만한 업계'라는 인식 회복은 모두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판교에 불어오는 새 바람이 어디까지 흘러갈까. 순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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