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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블리자드의 번역은 ‘한국적'일까?
송진원 기자 | 승인 2019.05.12 17:35

게임에 있어 번역이란 어떤 의미일까?

텍스트를 한글로 직역해서 옮기거나 최소한의 사실 관계에 지역적 특색을 첨부한 해석을 완성도 높은 번역으로 평가한다. 언뜻 보면 외국어를 해석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단순한 과정조차 시선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셈이다.

최근 영화 어벤져스 사례만 보더라도 번역이 팬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코제 ‘원데이특강’에서 현지화 작업 강연을 진행한 박해리 매니저 역시 같은 주제로 고민한 경험이 있다. 16년 만에 신규 IP(지식재산권)로 등장한 오버워치의 번역을 두고 문체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블리자드 번역의 목표는 뚜렷했다. 영어를 원어로 사용하는 유저들이 받는 느낌을 한국 유저들도 똑같이 느끼게끔, 원문의 어감을 살리는데 집중했다. 가령 ‘Fireball’은 ‘화염구’로 완역했으며 ‘Frostmourne’ 역시 ‘서리한’으로 직역해 콘텐츠의 의미를 전달했다. 

이러한 블리자드의 현지화 과정은 오버워치를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원칙에 얽매인 번역보다 재미에 집중했으며, 직역과 의역을 적절히 조합해 유저의 게임 플레이에 어울리도록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 변화 속에서도 현지의 느낌을 전달하는 고유의 스타일은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게임의 현지화 과정을 박해리 매니저는 텍스트와 음성,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했다. 텍스트의 경우 ‘화물’, ‘방벽’, ‘방어력’ 등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단어가 많은 만큼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번역된 텍스트는 두 번 다시 변경할 수 없기에, 단순히 의미뿐만 아니라 캐릭터 설정과 게임의 콘셉트를 동시에 만족해야 했다. 

가령 아나의 수면총의 원문은 ‘Sleep Dart’로 첫인상 자체가 총보다는 다트 게임에 가까웠다. 이에 현지화 팀은 수면 스킬이 아나의 생체 소총과는 다른 권총을 사용한다는 설정을 발견했고 국내 유저들에게 익숙한 총으로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어감과 이미지를 고려해, 원문과 다른 음역을 한 경우도 있다. 오버워치의 캐릭터이자 자비를 뜻하는 'Mercy'는 발음이 도저히 캐릭터의 아름다운 이미지와 맞지 않아 ‘메르시’로 의역됐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라일라크도 마찬가지다. ‘Rylak’의 발음이 기괴한 맹수가 아닌 꽃을 연상시킬 수 있어, 의역으로 돌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오버워치의 경우에는 원문 대사를 의역해 캐릭터 콘셉트를 강화하거나, 국내 상황에 맞춘 현지화 대사로 유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가령 원문상 리퍼의 ‘사수를 제거했으니 이제 나와라’라는 대사는 ‘총들고 설치는 놈을 제거했으니 이제 나와’로 번역됐다. 여기에 'I came in like a Wrecking Ball'이란 마일리 사일러스 패러디 대사는 국내에서 방영된 바 있는 ‘방가방가 햄토리’의 대사로 대체됐다.

본사의 개발 지원 업무를 도우며 있었던 에피소드도 공개됐다. 디바의 ‘송하나’라는 이름이 결정되기 전까지 많은 후보군이 있었는데, 캐릭터 이미지에 어울리는 실제 아이돌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오고 갔다. 또한 이름과 함께 트레이드 마크인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를 비롯한 여러 대사를 제안함과 동시에 대현의 성우 캐스팅을 지원했다. 

음성 현지화 과정 역시 텍스트만큼이나 철저한 고증 속에 유연한 해석을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평균적으로 1명의 오버워치 성우를 뽑기까지 필요한 오디션 횟수는 3회이며 3,4명의 성우 후보군들은 해당 캐릭터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물들로 선발한다. 간혹 모이라의 게일어와 브리기테의 스웨덴어처럼 희귀한 언어의 경우에는 원문 대사를 더빙한 후 본사에서 허가한 대사들만 게임에 적용한다. 

특히, 성우를 캐스팅함에 있어 블리자드가 중시한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캐릭터의 ‘배경’이다. 영어를 구사하는 캐릭터라도 해당 인물의 출신 지역이 어디인지에 따라 악센트를 구분했으며, 한국 특유의 존댓말을 캐릭터 관계에 맞춰 구사 여부를 결정하는 세부적인 설정까지 고려했다. 

이와 같은 음성 현지화 과정은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네마틱 영상을 더빙할 때도 영문과 한국어의 어순, 길이 차이를 고려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대사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가령 ‘슈팅스타’ 속 디바의 영어 발음 화면과 국내 더빙 음성을 맞추기 위해, 짧은 숨소리로 감정 표현을 섞어 세부적인 디테일을 맞췄다. 

이 밖에도 제작 기간만 6개월이 걸린 11,172자의 오버워치 폰트를 비롯해, 부산 전장의 소리를 녹음하려 실제 부산까지 방문한 일화를 소개하는 등 현지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임을 설명했다. 하지만 어렵고 고민이 많은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현지화 과정에 녹인 자신의 의도를 알아주는 유저들로부터 기쁨을 느낀다는 말을 덧붙였다. 

박해리 매니저는 “현지화 과정은 개발팀과 긴밀히 일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재미와 원문을 유저들의 입맛에 맞춰 요리하는 재미가 동시에 존재하는 작업이다”라며 “조용히 작업하지만 금세 알아차릴 수 있어 요란하고 사소해 보여도 중요한 업무라고도 할 수 있다”

 

송진원 기자  sjw@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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