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게임은 언어로 기능한다"

'게임은 문화다', '게임은 예술이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이야기다. 이번 발표는 거기서 몇 걸음을 더 나아간 발화를 갖추고 있다.

2019 BIC 페스티벌 컨퍼런스의 마지막 강연은 게임의 예술성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지점의 이야기다. 순천향대학교 이정엽 교수, 카이스트 도영임 교수, 아르스 프락시아 김도훈 대표가 무대에 앉아 게임의 예술성을 연구한 중간 결과를 밝혔다.

이정엽 교수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이 발의한 게임 법안이 계류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게임을 문화예술의 한 갈래에 포함시켜 관리하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게임이 법적으로 예술로 인정받지만 한국은 갈 길이 멀다. 

"두 국가의 차이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는 것이 연구가 시작된 배경이다.

5주간 진행된 플레이어 워크숍 결과, 그리고 스팀 포지티브 평가 리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가 이번 자리에서 공개됐다. 이야기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강연자 시점으로 내용을 최대한 유지하며 옮겼다.

카이스트 도영임 교수
카이스트 도영임 교수

* 도영임 교수 "게임예술대상을 만든다면, 무엇으로 예술성을 평가할 수 있을까?"

올해 처음으로 백상예술대상을 지켜보면서, 게임도 여기에 들어갈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도 기술 기반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예술로 인정받기까지 굉장히 오랜 기간 싸움이 있었다. 1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 (비디오)게임이 짧게 보면 50~60년 정도 지났다. 우리가 40년 뒤 게임예술대상을 시상한다고 쳐보자.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예술성을 평가할 수 있을까.

게임 체험이 유저에게 어떤 마음으로 공명되는지, 창작자들은 어떤 의도와 기대를 가지는지, 유저와 창작자의 접점은 무엇인지 제대로 논의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논의하기 위해 이 연구를 시작했다.

대중예술은 일상에서 향유되지만, 우리의 경험과 욕망을 확산시키고 자아성찰을 이끌어낸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게임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예술로서의 게임은 아직 많은 이들에게 의문을 준다. 그렇다면,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다른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술성 연구는 복잡해서 나 같은 심리학자 혼자 연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융합연구팀을 구성했다. 창작자에게 찾아가서 직접 의견을 듣고 유저에게 경험을 물었다. 실증적 방법론이다.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예술로서의 게임 생태계 조성을 지원할 수 있고, 정책 제안을 위해서라도 제안 증거를 만들어야 했다. 그것을 위한 융합연구팀에 심리학자와 평론가, 국문학자와 인류학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다.

* 이정엽 교수 "개발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플로렌스, 인사이드, 그리스, 스카이, 리갈던전, BEST LUCK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디스 오브 워 마인, 듀랑고, 에디스 핀치의 유산.

연구를 위해 10개 게임을 선정한 다음 분석했다. 그리고 해당 게임들의 개발자들과 접촉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 도쿄게임쇼에서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개발자와 인터뷰를 잡았다. 공통 질문 중 하나는 "게임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가"다. 스스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론도 흔히 있다. "그럼 애니팡도 예술이냐?" 같은 것. 하지만 과거 진중권 교수가 한 말이 있다. "영화 중 포르노 장르가 상당수 있는데, 그렇다고 영화가 예술이 아닌 것이냐"는 이야기다.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경우의 장점은 게임을 하는 유저에 대한 인식이 전환된다는 것이다. 개발자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로서 지원도 있고,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 최근 예술로서의 게임 법안 계류가 아쉬운 점은 개발자들의 목소리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10개 게임을 아트게임과 예술로서의 게임으로 나눴다. 전자는 개발자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예술로서 만든 게임들, 후자는 예술이라는 생각 없이 만들었는데 이 안에 많은 요소가 유저를 다른 방식으로 바꾸게 된 게임들이다. 그들에게 10개의 공통질문과 5개의 개별질문을 주고 답변을 받고 있다.

* 도영임 교수 "내 자신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반응, 놀라웠다"

유저 FGI에서는 대상 게이머들을 예술 프레임에 억지로 가두지 않았다. 평균 4시간 이상 게임플레이를 진행한 다음, 인상적인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설문을 진행해 텍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유저 12명과 연구진 5명이 모여 게임을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3주 정도 진행하니 반복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담화가 풍부하지 않고 제한된 의견으로 고착되겠다 싶어서 전략을 바꿨다. 자기가 생각한 인생게임이자 예술성이 높다 생각한 게임을 선정하게 했다. 그렇게 총 5주 동안 진행했다.

마지막 시간에 추가로 통합질문을 던졌다. 5주간 게임플레이 워크숍에 참여한 후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키워드로 답하게 했다. "인생과 게임을 관찰자 시점으로 비유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화가 나고 괴로운지, 다른 사람의 선택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보고 내 자신을 살펴볼 수 있었다" 등의 답을 얻었다.

놀랍다고 생각했다. 교사이자 연구자 입장에서 교육의 최고 가치는 자기 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에서 가치를 돌아보고, 의사결정이 무엇에 의해 이뤄지는지 돌아볼 수 있다면 사회적이나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활동이다.

평론 일을 하던 참가자는 게임 역시 평론가의 마인드로 보곤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솔직한 게임 경험을 듣기 시작하면서, 순수하게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어떤 경험을 느낄지 궁금해졌다고 털어놨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게임이 연결됐을때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는 사실을 느꼈다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미술관 표값은 아깝지 않지만 게임에 돈 쓰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던 유저였다. 그런데 활동 이후 "게임이 돈을 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라고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서 "몇십년 뒤에는 음악이나 영화처럼, 게임에 대해 이해하거나 읽어내지 못하면 교양이 부족한 사람이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호평받은 게임을 인생게임으로 꼽는 사례도 많았다. 하스스톤에서 순위권을 다투던 참가자는 자기가 왜 이 게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했다. 게임 속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면서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경쟁 게임도 누군가는 인생게임이라 부르고 예술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예술성 판단은 이분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다양한 게임이 제작되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 김도훈 대표 "스토리와 경험, 한국 게임들은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빅데이터를 통해 게임하는 사람들의 공감 포인트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흔히 데이터 중심에 위치한 키워드가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사람은 중요한 키워드를 자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빈도수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찾아봤다.

그 결과 2개 키워드가 중요하게 잡혔다. '경험'과 '스토리'다. 새로운 생각, 가치, 철학 등의 키워드와 연결되어 있다. 예술성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 감정을 고양하고 새로운 가치와 철학을 전달하면서 일상을 확장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 아닐까 싶다.

스팀에서 포지티브 리뷰 최상위 10개 게임을 모아 데이터를 분석해봤다. 연결관계를 파악하니 역시 스토리가 중심에 나타났다. 중앙에 스토리가 있고, 경험과 더불어 중요한 가치를 구현한다. 거기에 뮤직, 퍼즐, 그래픽, 디자인 등 키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한국 게임들이 얼마나 잘 준비됐고 역량이 쌓였는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예술로서의 게임을 다시 논하게 될 때, 스토리 역량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는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스토리와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잘 조합할 것이냐가 앞으로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 도영임 교수 "게임시장을 향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자"

게임의 예술성은 삶에 대한 공감이고, 동시에 현재 삶이 주지 못하는 대안적 공감이 아닐까 싶다.

학술적으로 예술성을 평가하고 지표를 만드는 작업은 미술이나 음악에서 굉장히 오랜 전통을 가지고 이뤄졌다. 게임미디어가 가진 가장 독특한 측면을 밝히기에 우리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 계속 확장해 나가면서 학문적으로 같이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10년 넘게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예술게임 몇개를 만든다고 해서 게임시장이 좋아질 거란 기대는 어리석다. 다양한 사람과 공명하고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시장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현안에 정책이 매몰되지 않고 50년, 100년 뒤를 내다보면서 진짜로 씨앗을 뿌리는 일이 무엇인지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 우리 연구가 조금이라도 인사이트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팀에서 활동하는 김상원 교수가 쓴 글로 발표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오늘날 게임은 언어로 기능한다. 게임을 통해 우리는 경험과 가치와 취향을 공유하며 기록한다. 게임 예술성 연구는 이 새로운 언어를 쓰는 화자와 청자를, 구조와 맥락을 탐색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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