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의 감성을 조화롭게 합치는 일은 쉽지 않다. '데자부(Deja Vu)'는 그 미션을 해낸 곡이다.

베스파의 큰 그림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걸그룹 드림캐쳐와 콜라보레이션으로 높은 수준의 곡이 나왔다. 2020년 킹스레이드 스토리를 다른 시각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 방영을 준비한다. 그다음 단계는 세계관을 확장하는 콘솔게임 신작이 될 예정이다.

게임과 아이돌의 콜라보레이션은 처음이 아니다. 게임 OST를 담당하거나 디지털 싱글 등으로 작업이 이뤄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아이돌 정식 활동 타이틀에 게임의 메인 스토리를 담은 것은 이례적이다. 

그래서 콜라보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킹스레이드와 드림캐쳐의 팬 사이에서 각각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드림캐쳐는 고유의 음악적 세계관이 손상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 킹스레이드는 게임을 벗어난 활동에 과투자가 아닌가 하는 불만. 전례가 없이 깊숙이 연관되면서 흘러나올 만한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양쪽 모두의 걱정은 뚜껑을 열어보자 양쪽 모두의 만족으로 되돌아왔다.

킹스레이드와 드림캐쳐의 궁합은 콘텐츠 안팎으로 잘 맞았다. 어두운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과정에서 희망을 찾는 게임과 음악의 감성, 그리고 대자본 없이 글로벌 시장에 영향력을 뻗쳐 성장 가도를 달리는 사업적 이해관계, 2017년 상반기 첫 등장했다는 공통점까지. 분야는 다르지만 흥미로운 인연이다.

드림캐쳐는 데뷔 시기부터 게임 OST와 어울리겠다는 반응이 자주 흘러나왔다. K-pop에서는 이례적으로 호러판타지풍 메탈을 음악 정체성으로 내세웠고, 독창성에 걸맞는 퀄리티를 갖췄다.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서로 세계관이 선명한 만큼 조율은 필요했다. 베스파는 드림캐쳐컴퍼니에 제안하면서 발라드 감성이 담긴 곡을 원했지만 드림캐쳐의 음악 색깔과 달라지는 부분이 있었다. 

예컨대 드림캐쳐의 대표곡 중 하나인 'GOOD NIGHT'는 빠른 BPM 기반에서 오르골 전주 뒤 몰아치는 기타 리프로 귀를 사로잡는다. 한편, 오르골 사운드는 이전 데뷔곡 'Chase Me' 뮤직비디오 엔딩에서 이어지는 등 세계관과 스토리가 악몽이라는 한 줄기로 엮어나가는 방식이다.

킹스레이드는 성검을 가진 용사가 마왕을 저지하기 위해 떠난다는 왕도적 시나리오에서 출발하는데, 디테일과 이후 전개에서 충실한 변주를 보여주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특히 챕터9 판데모니움은 예상 이상의 반전과 전개로 충격을 선사했다. "세상 재미없게 출발해놓고 나중 가서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스토리"라는 표현을 쓰기 적당하다.

'데자부'는 양측의 감성이 만나 탄생시킨 매력적 절충안이다. 템포가 너무 빠르지 않으면서도 가득 찬 사운드와 긴장감은 잃지 않는다. 

잔잔한 도입부를 이끄는 파트는 피아노. 그리고 절정을 향해 분위기가 상승하면서 오케스트레이션이 뒤를 받친다. 지금 킹스레이드 타이틀 화면을 장식하는 판데모니움 테마곡 'Not A Hero' 도입부와 비슷한 감각을 공유한다. 

'데자부'의 곡 구성에서 보여준 섬세한 디테일은, 내년경 방영이 예정된 킹스레이드 애니메이션 역시 기대하게 만든다. 아직 많은 정보가 베일에 싸여 있지만 수준급 제작진과 시나리오레이터가 준비에 들어갔다는 발표는 있었다. 킹스레이드 원작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고 색다른 시선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겠다는 각오다.

총 26부작으로 계획되고 있으며,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과 국내의 세계관 설정 및 디렉팅이 협업을 펼칠 전망이다. 유명 홍보사 덴츠가 연계되었다는 정보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홍보업계에서 압도적으로 정점에 올라 있는 곳이다.

여기에 베스파에서 개발 중인 콘솔게임 신작이 어느 시점에 공개될지도 관심사다. 아예 사옥에서 분리해 스튜디오를 차리고 출입이 통제될 정도로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는 곳이다. 밝혀진 정보는 킹스레이드의 스핀오프 스토리를 다룬다는 것 정도다.

IP가 건강한 생명력을 가지기 위한 핵심 조건은 세계관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베스파는 IP의 가치 확대가 최고의 목표라고 밝혔다. 

음악과 애니메이션, 그밖에 다양한 영상은 사실 게임과 뗄 수 없는 요소다. 그와 동시에 국내 게임사들이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영역이다. 인게임 서비스가 유저에게 만족을 준다는 기본 전제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계관이 가진 이미지를 표현하는 일은 게임을 가치 있는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된다.

킹스레이드는 3년차 게임이고 현 시점에서 베스파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콘텐츠다. 하나의 패턴에 만족하지 않고 이야기의 내실을 갖추는 시도는 도전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근본적 돌파구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에 자리잡은 쟁쟁한 미디어 프랜차이즈 속에서, 베스파는 어떤 색채를 보여주게 될까. 그 시나리오레이팅은 지금부터 지켜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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