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이 끝나면서 게임 생활의 한 해도 마무리됐습니다. 신작이 뜸한 연말연시, 1년을 되돌아보면 이렇게 많은 게임을 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합니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이상, 중요한 몇 순간은 오랜 시간 기억에 남게 됩니다. 그 기억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말이죠.

직접 경험한 시간 순서대로,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만한 기억 8종을 모아봤습니다. 뚜렷한 명작이 별로 없다는 2019년이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독특한 게임은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경험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이 즐거웠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환원:Devotion - 눈물의 엔딩

"나는 튤립을 많이 많이 접었다"

2019년 가장 많은 유저를 울린 게임이 아닐까요. 조각난 단서가 퍼즐처럼 모이다가 마침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 안타까움과 슬픔과 감동이 한 번에 폭발하면서 잊을 수 없는 엔딩을 선사했습니다. 연출과 음악이 어우러진 강렬한 내러티브에 더해 공포게임의 미덕인 긴장감도 놓치지 않았고요.

대만 게임사인 레드캔들게임즈는 반교:Detention에 이어 다시 한번 감동을 선사했고, 이제는 호러 스토리텔링 명가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과거 시대상을 통해 공감대를 끌어낸다는 것도 매력적인 정체성이죠. 비록 중국 쪽 정치적 이슈로 판매중단이 되는 수난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차기작을 빠르게 볼 수 있길 빕니다.

세키로 - 아시나 겐이치로에게 거둔 승리

물론 가장 어려운 상대는 따로 있지만, 지금 곱씹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겐이치로입니다. 게임 기본 시스템을 모두 익히고 난 뒤 마주하는 첫 시험대고, '여기서부터 진짜 세키로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뿜어내는 대결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많은 도전 끝에 클리어하는 순간 성취감은 짜릿했습니다. 입체적인 캐릭터도 한 몫 했고요.

프롬소프트웨어 특유의 게임성을 가지면서도, 혁신적인 면들이 돋보였죠. 튕겨내기를 통한 체간쌓기 이후 인살의 손맛은 다른 게임에서 볼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스토리도 제법 잘 짰고, 여운도 동시에 남겼고요. 올해 프롬은 엘든링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데, 또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신작을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토탈워:삼국 - 첫 전투, 한국어로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온 순간

진정한 삼국지 전투가 드디어 나왔구나, 살다 보니 토탈워 전투를 한국어로 듣는구나. 게임 시작 5분 만에 두 가지 부분에서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습니다. 부대를 클릭했을 때 병사들이 단체로 외치는 "주목!" "준비!". 생동감을 더하는 부분까지 치밀하게 더빙이 이루어지면서 토탈워 본연의 맛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치를 완벽하게 채우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삼국지와 토탈워 양쪽 팬들에게 조금씩 부족한 면이 있었고, 첫 시나리오 DLC로 기존 삼국지와 동떨어진 팔왕의 난이 나왔다는 것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외교와 인공지능 발전으로 끊임없이 나온 변수는 분명 재미있었습니다. 이번달 출시될 새로운 DLC 천명이 다시 '삼탈워'를 실행하게 만들지 궁금해집니다.

BTS월드 - 으어어 뭐야 이거 신세계야 살려줘

개인적 호기심과 업무를 이유로 시작했고, 초반 진입장벽은 그 어느 게임보다 높았습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감성 면에서 아주 충격적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시네마틱이 오글거릴 줄 알았는데, 연기력이 괜찮아서 볼 만했고 오히려 평소 대화씬이 문제였습니다. 손발이 뒤틀려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경험은 게임에서 쉽사리 하기 힘듭니다.

'스며든다'고 하던가요. 이것도 보다 보니 즐거워져서 나중에는 BTS 멤버들의 프로필까지 다 꿰게 되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관심이 생기다 보니 연말 무대도 챙겨 봤습니다. 주인공의 주접 섞인 찬양은 끝까지 생리적으로 힘겹긴 했지만요. 사실 일 아니면 겪어보지 못했을 게임이니만큼, 정말 진귀한 경험을 했다는 의미에서 넣어봤습니다.

파이어엠블렘 풍화설월 - 2부의 그 전투

스포일러 위험이 커서 언급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네요. 학생 육성과 커뮤니케이션만 해도 시간 잡아먹는 재미를 주던 게임인데, 2부로 넘어가면서 사람 감성을 제대로 건드리는구나 싶었습니다. 1부에서 이미 겪었던 전장을 다시 한번 만났을 때, 상황 변화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죠.

돌이켜보면 스토리 연결이 군데군데 매끄럽지 않았고, 다회차를 유도하면서 회차별 전개가 다채롭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웠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빠져들어서 즐긴 게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긴박하면서 비장했던 당시 배경음악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듯합니다.

BIC페스티벌 - 행사장 바깥 통유리로 들어온 부산항 전경

2019년은 한국 인디게임이 한 발 나아간 해입니다. 9월 열리는부산인디커넥트(BIC)페스티벌은 그 상징이 되고 있죠.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로 자리를 옮겨서 더 큰 실내 공간에서 관객을 찾아왔고, 출품작 역시 양과 질에서 눈에 띄게 올라갔습니다. 푸드코트 옆으로 한 눈에 들어오는 부산항의 모습은 장관이었고요.

한국 인디게임은 아직 척박하지만, 늦고 힘겹게나마 씨앗을 틔우고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언폴디드 시리즈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를 다루는 MazM: 페치카처럼, 역사 소재의 뜻깊은 게임도 출시됐거나 출시 예정이고요. BIC페스티벌에서 시연한 래트로폴리스도 좋은 성적을 올렸고, 가장 큰 기대작이었던 스컬(Skul)이 올해 초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2020년은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링피트 어드벤처 - 플랭크 엉덩이 들기의 고통

유저들에게 고통과 재미를 함께 주면서 화제가 된 링피트 어드벤처가 빠질 수 없습니다. 죽을 것 같이 힘들면서도 칼로리는 빠지지 않아 우리 멘탈을 공격하는 이 게임은, 중반부터 플랭크와 마운틴 클라이밍 등을 추가하면서 우리에게 대화를 건넵니다. "초반이 힘들었다고? 진짜 지옥은 지금부터인데" 라고.

출시 후 수요가 폭증하면서 품귀 현상이 이어질 만큼 강력한 입소문이 퍼졌는데요. 실제로 해볼수록 그 이유를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운동 프로그램으로 이 정도 게임성을 살렸다는 것은 전례 없던 일이니까요. 스토리 엔딩을 보고 나면 새로운 월드와 2회차가 추가되면서 끝이 없습니다. 원래 운동은 끝이 없는 법입니다.

포켓몬 소드/실드 - 체육관 전투 BGM

관중 함성과 어우러지면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 음악도 같이 절정으로 달려갑니다. 축구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스테이지 디자인과 맞물려 최고의 스타일을 완성해냈죠.

사실, 게임 자체는 평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랜 시리즈임에도 충분한 장점이 있었지만, 아쉬워진 점도 그만큼 많았거든요. 하지만 처음으로 체육관 관장과 대결을 시작했을 때 느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이 음악만큼은 포켓몬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기억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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