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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 논쟁, 아직 '개념 정리'도 안됐다
길용찬 기자 | 승인 2020.04.08 15:25

확률형 아이템을 향한 규제는 늘어난다. 유저 부담은 그대로다. 확률형 아이템이 무엇인지 고민은 허술했고, 그만큼 규제망도 허술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게임법 전부개정안 초안이 공개된 이후 논제는 다시 타올랐다. 뽑기와 랜덤박스는 확률형 아이템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개정안은 그동안 게임업계에서 통용되던 자율규제를 법적으로 명시했고, 사행성 억제를 위한 구체적 실천 계획을 제시했다.

국내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법적 제한 이전에 게임사들 스스로 자정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으며, 여러 차례 강화됐다. 그러나 유저 입장에서 확률형을 향한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말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모바일 MMORPG의 창궐 속에서 부담은 점점 늘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규제안 내용이 실제 사행성 게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현상은 게임법 개정 뒤에도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개념 정립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 "확률형 아이템 비중을 낮췄다고? 그런데 사행성은 왜 그대로죠?"

자율규제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정의는 각종 논란에서 보편적으로 자리잡았다. '유료 구매한 재화로 내용물이 확실하지 않은 상품을 구매해 확률에 따라 내용물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 정의는 게임의 과금모델이 무한히 세분화되는 가운데 허술하게 남았다. 유료 재화와 내용물의 개념부터 피하기 쉬워졌다. 게임의 최고 장비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광고하면서, 액세서리 등으로 과금모델을 옮기는 조삼모사 형태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확률형 획득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인게임에서 아이템을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데, 강화가 사실상 필수고 합성으로 확률적 등급 향상을 노려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강화 실패시 아이템이 파괴되는 시스템이 들어갈 경우 초창기 확률형 아이템보다 사행성은 가혹해진다. 게다가 획득이 아닌 강화나 합성은 자율규제 항목에서 비켜나 있어 확률 공개에서도 자유로운 사각지대다. 

지금 규제안에 명시된 확률형 아이템을 단 하나도 넣지 않고 사행성이 치솟는 과금모델을 만드는 작업도 충분히 가능하다. 단순히 강화와 합성을 규제에 추가하는 방법을 쓰더라도, 게임사들은 또 다른 신규 모델을 만들어내 빠져나갈 수 있다. 게임의 진화는 그만큼 빠르다. 

* 확률에 관대한 확률형 아이템이 확률 규제를 받을 확률은?

반대 사례도 있다. 대부분의 과금모델을 확률형에 의존하는데, 과금 유도는 크지 않은 시스템이다.

수집형 RPG 중 모든 캐릭터를 뽑기로 얻어야 하는 형태는 전형적인 확률형 아이템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틀에서는 운영 형태에 따라 유저 만족이 갈린다. 확정 획득을 넣고 재화를 풍성하게 공급해서 소과금만으로 필요한 캐릭터를 모두 얻는 경우도 있다. 

기준점을 잡기 어려워지는 수많은 모델 중 대표 사례가 코레류다. 일본의 함대컬렉션(칸코레)에서 파생된 과금모델 형태로, 인게임에서 얻고 사용하는 재화를 캐릭터 획득에서 함께 사용한다. 소녀전선과 벽람항로가 잘 알려진 흥행게임이고, 한국게임 중에서는 라스트 오리진이 자리잡았다.

뽑기에 쓰는 인게임 재화를 유료로 보충할 수 있어서 규제 대상에 들어가는데, 실제 플레이할 경우 사행성 우려가 낮다. 특히 라스트 오리진은 무과금과 소과금 친화적 운영으로 인해 유저 선호도가 높다. 이런 게임들에 단지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행성 딱지를 붙여야 할까?

확률형 아이템의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있지만 사행성이 작용하는 모델이 있고, 반대로 유저 친화적 모델을 구축했지만 규제 대상으로 몰릴 게임도 있다. 쉽지 않은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한데, 논의와 연구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 최초의 질문: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담론은 아직 1단계에서 멈춰 있다. 자율규제와 법적규제 사이 갈등이다. 한쪽은 사행성에 빠져 수억원을 탕진한 사례를 이야기하고, 다른쪽은 거시적 산업 발전과 보호를 말한다. 

기본적인 고민이 빠지면서 문제는 정체된다. 확률형 아이템이 무엇인지, 어느 형태에서 게임 속 유저가 사행성에 자극을 받는지, 어떤 기준까지 문제를 삼을 것인지. 게임 사행성 관련 토론과 간담회는 수도 없이 열렸지만 이런 주제는 몇 마디 찾기 어려웠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는 지나친 과금 유도와 사행성 유발로 인해 흘러나오기 시작한 목소리다. 그렇다면 확률형 아이템 중 사행성을 유발하는 모델이 어떤 특성을 띠는지 연구해야 한다. 지금은 주객전도가 벌어져 확률 규제 여부만 초점이 몰려 있다.

국내 게임산업은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에 지나치게 안주했다.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날로 커졌고, 게임의 질적 정체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게임과 확률형의 관계에서 본질을 연구하지 않고 일괄적 규제에 들어간다면, 오히려 사행성 강한 게임들은 허술한 법망을 피해 돌아가기 쉽다.

학술적, 문화적 분야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개념 정의에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논의는 빨리 시작할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이 나올수록 좋다.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을 통해 풀어내야 한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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