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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 엘리시움, 세상에 없던 비디오게임의 내러티브
길용찬 기자 | 승인 2020.09.09 17:53

 

재미있는 게임은 많다. 그러나 새로운 재미를 찾는 일은 흔하지 않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완벽하게, 처음 보는 방식의 재미를 가지고 나타난 게임이다.

작년 10월 출시 이후 해외 평단과 유저들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단점이 없는 게임, RPG의 미래, 장르의 혁신. 디스코 엘리시움이 받은 평가들이다. 에스토니아의 작은 게임사 ZA/UM은 단숨에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네이티브 영어능력을 가지지 않은 이상 게임을 온전하게 즐기기 힘들었다. 97만개에 달하는 단어 볼륨에 더불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어려운 표현과 속어가 독해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8월, 한국어 공식 적용으로 화제의 게임을 편하게 맛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주인공은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숙취 상태에서 깨어난다. 주변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과, 현재 사건 해결을 위해 도시 마르티네즈에 왔다는 것만을 알아차린다. 다른 서에서 파견된 파트너 형사와 함께 의문의 살인 사건 수사를 시작하며 이야기도 함께 시작된다.

게임의 기본 틀은 CRPG로 불리는 클래식RPG와 크게 다르지 않다. 쿼터뷰 시점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상호작용을 하고, 오른쪽 화면에 지문과 선택지가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기억상실 주인공이라는 발단은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하지만 '스킬'들이 자기 멋대로 날뛰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방식의 게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게임 속에 존재하는 24개 스킬은 주인공 캐릭터의 구성 요소를 담당한다. 그리고 4개의 카테고리에 6개씩 묶인다. 논리와 개념화 같은 스킬은 지성에, 육감과 물리력 등은 육체에 속한다. 

스킬은 모두가 다른 인격체다. 말투는 물론 성격과 가치관이 제각각이고, 급기야는 정치성향을 규정하기까지 한다. 연극 스킬은 정말 사극풍으로 말하고, 전기화학은 그저 본능 욕구에 미쳐 있다. 이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 활용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곧 디스코 엘리시움의 RPG다. 

내 속의 감정이 캐릭터화된 소재는 종종 있었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대표작이고, 국내에서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 인기를 끌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게임이기 때문에 가능한 새로운 방식을 사용한다. 스킬끼리 서로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싸우기도 하고, 권위의 조언을 들어 NPC에게 강하게 나가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보기도 한다. 

모든 것이 상호작용으로 살아 숨쉬는 가운데, 유저는 무수한 선택지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방향을 누른다. 때로는 TRPG와 같이 주사위 굴리기로 판정한다. 이때는 판정 스킬의 레벨을 얼마나 올렸는지, 그전에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따라 확률이 요동친다. 설령 실패해도 상관은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유저는 최종 결말에 도달할 수 있다.

스토리의 큰 줄기는 같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유도는 놀라울 정도다. 캐릭터의 콘셉트를 마음대로 정해 행동하는 게임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답은 없다.

강력한 거한이 지키고 있을 때도 수많은 갈림길이 생긴다. 힘이 좋다면 때려눕힌 다음 통과해도 좋고, 민첩한 캐릭터는 우회로를 향해 날렵하게 몸을 던져도 된다. 머리나 화술로 돌파하는 방법도 있다. 이도 저도 실패하면 그 거한의 인종주의 사상을 강제 주입당하고 통과하기도 한다. 

유저의 가치관과 정치성향에 따라 인물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다가오고, 그것을 게임플레이에 반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가치관 선택은 상호작용이 뒤따른다. 반대로 자신은 자유주의지만 극단적 파시즘에 빙의해보는 등 역할극 플레이도 흥미로울 수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RPG에서 경험한 적 없는 내러티브를 가졌다. 동시에 RPG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다. '역할극', 그리고 선택의 분열이다. 이것은 비디오게임에서 그동안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테이블토크다.

게임의 매력은 독창성 밖에도 있다. 감각적인 분야에서 정체성을 확실하게 지녔다. 일관된 화풍으로 분위기를 살리는 아트워크, 결정적인 순간마다 귀를 짜릿하게 만드는 음악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스토리에서 개성이 넘친다. 후반부 이야기는 유저에 따라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문학적 구조를 정성스럽게 부숴나가는 '제대로 된 해체주의'라고 평해도 손색이 없다.

약점이 없는 게임은 아니다. 게임의 이야기는 큰 틀에서 바뀌지 않는다. 게임 속 선택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기보다, 엔딩에 도달하기까지의 자기 자신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이 방식은 유저에 따라 크게 평가가 나뉠 수 있다.

엄청난 양의 텍스트에 눈이 아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을 보자마자 바로 다른 능력치로 재시작하고 싶어지는 마력을 가진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비디오게임만이 가능한 재미있는 예술성을 그려냈다. 아주 낯설지만, 최고의 *리듬*을 가진 디스코였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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