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지 않았다. 차트를 지배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단단하게 빛난 한국게임들이 있었다.

2020년 한국게임 매출 최상위권은 대부분 모바일 MMORPG가 차지했다. 대형 게임사를 중심으로 야심차게 출시한 '대작'들이다. 어느새 국내 게임계에 흥행 공식은 자리잡았다. 공식에서 벗어난 게임도 많았지만, 미디어와 유저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는 힘들었다.

드러나지 않는다면, 찾아서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 게임의 다양성은 생태계의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다. 기존 한국게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각자의 의미를 제시한 게임 5종을 소개한다.

1. 베리드 스타즈 - 지금 시대 가장 필요한 이야기

검은방-회색도시 시리즈의 시나리오레이터 겸 디렉터, '수일배' 진승호가 돌아왔다. 플랫폼은 PS4와 닌텐도 스위치, '맨 땅에 헤딩'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만큼 콘솔 작업은 힘겨웠다. 결실은 있었다. 7월 출시 후 패키지 물량이 수차례 동날 만큼 구매 열기가 뜨거웠다.

스토리 중심 어드벤처고, 게임성에서 아쉬운 부분은 군데군데 보인다. 하지만 스토리와 세계관만으로도 게임의 가치는 빛난다. 어떤 게임보다도 현실 사회에 맞닿아 있다. 인터넷과 미디어 속에서 실시간으로 상처 받아가는 개인들의 묘사는, 1인미디어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는 시점에 반드시 필요했다. 기대를 충족시키는 이야기였다.

2.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 - 플랫폼 이식을 넘어선 업그레이드

PC 플랫폼은 아픈 기억뿐이었다. 12년 전 트릴로지는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IP를 극적으로 부활시킨 디제이맥스 리스펙트는, 작년 12월 스팀 PC판 이식으로 다시 날아올랐다. 신곡들은 강렬했고 비주얼도 훌륭했다. K/DA의 'POP/STAR' 등 인지도 높은 해외 곡가의 콜라보도 화제를 이끄는 주역이 됐다.

3월 정식출시부터 매달 이어진 사후지원은 이식의 단점마저 없애는 데에 성공했다. 해결이 가능할까 싶었던 싱크 문제까지 해결해냈다. 현재 판매량은 시리즈 사상 최다로 추정된다. 한국 리듬게임의 자존심은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

3. MazM: 페치카 - 잊지 말아야 할 시대, 그리고 '인간'

베리드 스타즈가 현대에 짚고 넘어가야 할 화두를 던졌다면, MazM: 페치카는 역사 속에서 잊힐 뻔한 정신을 되새긴다.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페치카' 최재형 선생을 중심으로, 당대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모바일 어드벤처다.

스토리텔링형 게임 'MazM' 시리즈를 제작해온 자라나는씨앗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허투루 다루지 않았다. 53편에 달하는 논문을 분석한 끝에 역사학자들까지 인정할 만큼 완벽한 고증을 구현했다. 독립운동을 다룬다고 해서 지루할 것이라고 짐작할 필요도 없다. 게임 속 담긴 내러티브는 촘촘하고 흥미롭다. 재미를 갖췄다는 의미다.

4. 스컬(SKUL) - 이게 액션이고, 이게 개성이다

국내 인디게임 유저 사이에서 최대 기대작이었다. 네오위즈가 퍼블리싱을 발표하며 인지도는 더욱 늘었다. 2월 얼리액세스 출시 이후 지금까지, 7천개에 육박하는 리뷰 중 92%가 긍정 평가를 남기고 있다.

스팀 플랫폼에 로그라이트 액션게임은 이제 너무 많다. 그 속에서도 손맛이 밀리지 않았고, 게임의 정체성까지 잡았다. 미학적으로 완성된 픽셀아트, 해골 주인공 시점에서 머리를 바꿔 끼며 펼쳐지는 팔색조 액션은 유저를 매료시켰다. 정식출시까지 남은 과제는 하나, 아직 짧은 볼륨을 완성시키는 일뿐이다.

5. 영원회귀: 블랙서바이벌 - 원초적 재미로 되돌아간 디자인

리스트에 넣어야 할지 주저했다. 이제 얼리액세스 출시 1개월이고, 멀티플레이 게임인 만큼 차후 운영 변수가 크다. 하지만 초반 성적과 게임성만으로도 올해 한국게임을 마무리하는 자리에 놓기 적절하다. 쿼터뷰 시점에 AOS와 비슷한 조작 방식, 장르는 배틀로얄. 과거 배틀라이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컨트롤과 전략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췄다.

장비 제작트리나 파밍루트 설정 등 독자적 시스템이 무수한 분기점을 만들어냈다. 국내 스팀 접속자와 PC방 순위까지 상위권에 올랐다. 갑자기 등장한 루키의 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한국 게임계에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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