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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게임, '확률' 속에 영원히 숨을 수 없습니다
길용찬 기자 | 승인 2021.03.03 13:50

회사 앞에 트럭이 늘어섰고, 업계 앞에 법적 규제안이 놓여 있습니다. 지금 한국 게임계를 표현하는 2가지 풍경입니다.

주류 게임들의 확률 의혹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게임 깊숙한 곳에 공개되지 않은 확률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주요 과금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공개된 확률조차 믿을 수 없게 되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습니다. 

유저들은 더 이상 온라인으로만 따지지 않았습니다. 뽑기 비용에 비하면 훨씬 적은 금액을 모아 트럭을 보냈고,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게임의 확률 문제는 이제 모든 미디어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율규제에 맡겨온 확률 공개 의무를 법적으로 명문화하는 게임법 개정안도 입법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게임산업협회와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등 주요 단체는 공식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영업의 자유를 침범하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영업비밀이라는 단어까지 나왔습니다.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왜, 어떻게 분노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평화로웠다가 갑자기 화가 난 것이 아닙니다. 유저도, 미디어도, 지켜보던 사람들도. 조금씩 참고 용인하던 선을 지나치게 넘어버리자 결국 폭발한 것이 K-확률의 현주소입니다.

* 자율규제 준수... 그 속에 숨은 '파생 확률'들

확률표기 법제화에 반대하는 주요 근거는 이미 잘 시행하고 있다는 자율규제입니다. 준수율이 90%에 육박하기 때문에, 진흥시켜야 할 업계를 강제로 규제해 위축시킬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준수율은 사실입니다. 자율규제는 매우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지금 규제안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매달 공표되는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물 공표 현황을 볼까요. 가장 오랜 기간 규제를 지키지 않은 3종 게임으로 도타2, 브롤스타즈, 에이펙스 레전드가 꼽힙니다. 이 게임들과 지금 매출 상위권 한국게임들을 비교해봅시다. 양쪽 게임을 모두 겪어본 유저들에게 어느 쪽의 과금유도와 확률공개가 투명하냐고 묻는다면, 나올 대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자율규제는 무엇을 위해 규제하는지, 정말 규제가 되고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잃어버렸습니다. 한국게임 상당수는, 그중에서도 MMORPG는 '과금 파생상품'으로 확률표기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게임에 자율규제 인증마크는 달립니다.

장비 합성에 이어서 펫을 합성하기 시작하고, 캐릭터 직업도 합성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최고 등급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최상위 유저들은 끝없이 지갑을 엽니다. 아이템 강화에서 더 나아가 특수 강화를 만듭니다. 거기에 무작위 옵션을 부여하고 차등 등급을 둡니다. 이 모든 것들은, 대부분 확률 표기가 없습니다.

이제는 '빙고판'도 흔합니다. 요구사항에 적힌 재료를 확률적으로 모두 얻으면 완제품 보상을 획득하고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는, 이제는 원산지 일본에서도 금지된 컴플리트 가챠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하나만 얻으면 완성되는 시점부터 그 마지막 재료는 끝없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에 따른 확률은 알 수 없습니다.

대답은 간단하게 돌아옵니다. "인게임에서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자율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요. 몇 개월 동안 인게임에서 그 재료를 얻었다는 유저가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데도 불구하고.

민간 창의성을 보호하기 위해 자율규제에 맡기자, 창의적으로 확률을 숨기는 기법이 발전했습니다. 책임을 지는 방법조차 자율적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게임산업입니다.

이상헌 의원은 "강원랜드 슬롯머신조차 확률은 공개한다"고 지적했다

* 게임이 '확률성분표'만 보고 찍어내는 기계였던가

게임사의 입을 빌린 보도가 나올수록, 유저 분노는 더욱 타올랐습니다. 익명의 게임사 관계자는 "확률 공개는 곧 라면수프 구성비 공개와 같고, 어느 나라에서 사기업 영업비밀을 소상히 밝히라고 하느냐"는 대답을 남겼다고 하죠.

들어맞지 않는 비유입니다. 음식 레시피가 영업비밀인 이유는 그것만 알아내면 맛이 흡사한 유사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확률 공개가 영업비밀이 되려면, 오직 아이템 확률만 똑같이 할 때 거진 똑같은 게임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합니다. 한국 게임계가 게임의 개성을 모두 포기하고 확률장사만 차별화해서 돈을 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 수준까지 왔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게임계 영업비밀은 소스 코드, 모델링이나 아트워크 같은 리소스의 원본 등이 해당합니다. 물론 확률 설계를 소스 코드와 연관 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아이템 획득 여부를 결정하는, 자율규제에서 공개했던 수준의 게임 확률을 기밀급 선상에 놓긴 어렵습니다. 혹여 기밀 확률을 복잡한 코드에 대응할 만큼 다변화해서 숨긴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현재 확률을 향한 요구는, 소비자가 알아서 사먹을 테니 적어도 영양성분표는 보고 사자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먹는 우유가 저지방인지, 무지방인지, 유당과 단백질과 칼슘이 몇 퍼센트 함량으로 들어가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 사실, 유저들은 충분히 관대하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세미나 막바지에 나온 말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여론에만 의존하는 포퓰리즘에 정치인들이 대응해 졸속 규제를 만든다"고요.

유저들은 보통 게임사에 많은 요구를 합니다. 하지만 오직 요구만 하거나 비판만 했던가요. 2013년경 게임을 마약과 알코올처럼 취급하려는 '4대중독법' 입법 시도가 이루어질 때, 최근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논란 때, 그밖에 청소년 범죄를 게임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누구보다도 크게 분노하고 나서서 게임계 편을 들어준 것이 한국 유저들입니다.

그 유저들의 눈빛이 지금 왜 싸늘할까요? 답은 금세 나옵니다. 그동안 한국 매출 최상위 게임들이 추가해온 과금 코드, 날로 발전해온 자율규제 우회 기술과 숨겨진 확률들. 켜켜이 쌓인 기록을 되짚으면서, 참고 참다 터져나온 유저들의 아우성을 포퓰리즘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요.

'가챠의 왕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조차도, 최근 몇 년간 나오는 게임 대부분이 확정지급 상한선 시스템(천장)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국내 유저 및 정계의 요구는 천장 도입까지 오지도 않았습니다. 확률이 매우 낮아도 좋고 평생 뽑을 가망이 없어도 좋으니 그저 있는 확률만 공개하고 지켜달라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크게 들고일어나지 않은 한국 유저들의 인내와 애정, 그리고 지금 와서도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관대함에 경의를 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 수많은 경고, 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가 떠나거나 법적인 강제규정이 따라오기 전에 게임의 발전 방향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마주쳐야 하는 일이다. 고민은 빠르게 시작할수록 좋다"

2019년, 게임사들의 확률표기 회피를 지적하며 마지막에 쓴 말입니다. 그때 이미 자율규제를 향한 시선은 일촉즉발이었습니다. 너도나도 제도를 우회해 확률을 숨겼고, 대놓고 슬롯머신을 돌리는 듯한 뽑기 연출까지 나왔습니다.

그보다 전인 2018년은 국정감사 현장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직접 공격받았습니다. 심각한 사행성과 청소년 문제가 국회의원들의 입에서 나왔죠. 몇달 뒤 확률형 아이템 게임에 청소년 접근 차단 논의까지 잠시 나왔습니다. 불합리할 만큼 철퇴를 맞기 전에 확률 사각지대를 개편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당장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칼이 목 앞까지 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우려했던 미래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계까지 왔던 유저들의 인내는 결국 폭발합니다. 이제 정계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를 말합니다.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게임계 인사들의 비상식적 대응이 이어집니다. 분노에 기름을 붓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 어려운 요구일까?

정리하자면, 게임계를 향해 쏟아지는 요구는 간단합니다. 게임사는 지금 운영하는 그대로 하면 됩니다. 혹시 확률에 손을 댄 것이 있다면, 제대로 반성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됩니다.

표기된 확률과 다르거나 변동확률이라는 의혹이 생겨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투명하게 조사를 받고 의혹을 해소하면 됩니다. 그동안은 조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의혹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규제가 자율이었기 때문에 조사 권한도 자율이었습니다.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악으로 취급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뽑기가 들어간 게임을 재미있게 즐긴 경험도 많고, 그중 몇몇은 뽑기 없는 게임들보다 훌륭하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반복해서 언급되고, 지적되고, 요구되는 대상은 '믿을 수 있는 확률'입니다.

물론 역차별 문제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외산 게임 중 일부는 각종 사행성 운영과 저질 광고로 고통을 주곤 하죠. 하지만 자율규제로는 더더욱 역차별을 막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막기 위해서라도 법적 테두리에서 타협을 진행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게임사들은 제대로 된 대화에 응하지도 않았습니다.

*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한국게임 매출은 매년 늘었죠. 작년 대형 게임사들의 연간매출은 2~3조원, 영업이익은 1조원 안팎을 오갑니다. 반면, 유저는 줄고 있습니다.

2017년 70.3%, 2018년 67.2%, 2019년 65.7%. 한국콘텐츠진흥원 실태조사에서 1년 내 게임을 즐긴 응답자 비율입니다. 심지어 남은 유저 중에서도 해외 게임으로 넘어가는 비율이 점차 늘어납니다. 매달 수천만원을 지불하는 극소수 '핵과금러'를 향한 의존도는 이미 기형적입니다.

폭락하는 출산률과 뉴미디어 경쟁은 지금 한국게임계를 빠르게 늙게 만들 겁니다. 게임은 이제 미디어 전체 단위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OTT 서비스에 매달 몇 천원만 지불하면 수많은 고품질 영상을 조건 없이 즐길 수 있는 시대입니다. 다시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래서 매출 추이조차 꺾이는 순간이 다가온다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도 기회는 남았습니다. 확률이 낮아 생긴 문제도 아닙니다. 0.00002%로 명시된 확률을 보면서도 수많은 유저가 뽑기를 돌립니다. 더 큰 대립으로 변하기 전에 타협점을 찾을 때입니다. 당장 논란은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문제 유보입니다. 

한국게임은 아직도 희망이 있고, 가능성을 가졌습니다. 트럭시위 유행 가운데 좋은 운영 고맙다며 유저들이 돈을 모아 커피트럭을 보내려던 게임도 있습니다. 서버비에 보태달라며 굳이 돌리지 않아도 되는 뽑기에 일부러 돈을 쓰는 게임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뜻을 가진 개발자들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작품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만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합니다. 산업 진흥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족할 때 이루어집니다. 게임산업 '진흥'에서 떠올리는 업계와 유저의 모습이 부디 같길 바랍니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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