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극장가는 ‘명량’의 전무후무한 흥행 아래 각 배급사의 자존심을 건 흥행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기존의 흥행기록을 모두 갈아치워버린 이순신 장군의 위세 아래 각 대작들이 적당히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 만한 흥행을 하고 기분 좋게 악수를 하며 헤어진 훈훈한 모습이었죠. 물론 대작들의 경우였습니다. 소위 흥행작들을 제외하고는 상영관을 몇 개 잡지도 못하고 다양성 영화관 등지에서 교차상영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흥행작을 다보고 나선 볼 수 있는 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였죠. 날이 갈수록 다양성 영화들은 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군요.

그렇게 놓쳤던 영화 중에 하나인 ‘족구왕’이 VOD 서비스를 시작하여 비로소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서비스를 시작하던 날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는데, 아마 미녀배우이자 영화의 여주인공인 황승언씨의 힘이 컸으리라 짐작됩니다. 영화 내에서도 대학교의 퀸카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소화하며 아름다움을 뽐내시더군요.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씨와 같이 대학생의 범주를 벗어난 아름다움이라기 보단 ‘건축한 개론’의 배수지(수지)씨가 맡은 서연의 다른 버전이랄까요? 실제로 대학생활 동안 한번쯤 동경했을 법한 그런 미녀캐릭터입니다.

‘족구왕’은 제목과 포스터, 홍보문구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청춘 스포츠 영화의 외양을 띄고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스포츠 영화 중엔 청춘이라 불릴만한 시절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별로 없다 보니, 일본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는 점이 보입니다. 독특하고 사랑스런 캐릭터들, 비주류 스포츠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모습이나 루저 같은 주인공들이 노력을 통해 꿈에 한발짝 다가가는 모습들이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족구왕’은 한국 젊은이만이 느낄 수 있는 사회적인 풍토와 족구라는 스포츠가 한국 내에서 가지는 독특한 지위를 통해 일본의 청춘 스포츠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에 서게 됩니다. 같은 상황이나 비슷한 풍의 대사가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법이고, 한국이라는 사회가 밀어붙이는 성공을 향한 개인적인 채찍질의 정반대 지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재밌잖아요”라는 한마디는 일본 영화의 같은 대사가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울림이 있습니다.

영화적인 만듬새로는 단점이 더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주제를 걷어내고 나면 빈약한 내러티브와 종종 뜨악할 정도로 주제를 그대로 전달하는 낯간지러운 대사들과 걷어내는 편이 좋을 법한 장면들이 눈에 띕니다. 특히나 후반부에 홍만섭이 안나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영어수업에서 연극을 하는 장면은, ‘조금 낯간지럽더라도 감동을 해야겠다’라는 호의적인 입장에서 감상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고개가 갸웃했습니다. 특히 대사의 결이 빈약하다고 해야 할지, 그가 하는 대사의 대부분이 이 시점에 왜 해야 하는 이야기인지 공감이 가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지는 매력은 전혀 퇴색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바라는 인간상의 정반대를 외치는, 그저 재미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니까,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막무가내식 주제의식의 매력이 기반을 닦고, 시각적으로는 땀냄새가 풀풀 풍기는 장면조차 포카리스웨트 광고의 상큼함이 느껴질 정도로 청춘의 결을 잘 잡아낸 연출이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다들 하나씩 부족하지만 부족한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지붕을 덮으며 매력의 마무리를 짓습니다. 근래 코미디 영화 중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좋은 영화들이 그렇듯이, 기분이 좋은 와중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 마련이죠. (비록 그 사유의 폭이 깊지 않더라도, 어떤 사유들은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되기 마련입니다.)

특히, 홍만섭 역의 안재홍씨는 ‘족구왕’ 영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뿜어냅니다. 분명 의도적으로 찌질한 복학생의 캐릭터를 조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이 지날 수록 그에게 빠져들고, 중반을 넘어서면 그의 어눌한듯한 눈빛이 장면마다 다른 대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족구대회 결승 행이 결정되고 기숙사에 들어와 땀에 쩐 모습으로 선배 형국이 던지는 ‘너에게 족구는 뭐냐’는 질문에 “재밌잖아요”라고 대꾸하는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올해 감상한 영화 중에서 가장 마음을 흔드는 장면이 아닌가 싶네요.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 이해웅(http://yarkteim.blog.me)
저작권자 © 게임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