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배우를 꼽으라면, 취향에 따라 차이는 있을 지 언정 항상 일이위를 다투는 배우가 있으니, 바로 마이클 패스벤더입니다. 조각상을 떠올리게 하는 몸과 얼굴 생김새, 성우 못지 않은 매력적인 목소리와 독일 출신 특유의 독특한 억양, 블록버스터와 독립영화, SF에서부터 시대극까지 종횡무진 온갖 영화를 오가면서도 어느 곳에서도 잃지 않는 묵직한 존재감과 출중한 연기력까지,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란 이런 배우를 지칭하려고 있는 단어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영화 ‘프랭크’는 지금 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이 마이클 패스벤더가 사람들이 간절히 보길 염원하는 그 출중한 얼굴(!)을 가리고 시종일관 가면을 쓴 채로 등장한다고 해서 제작 시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애석하지만) 그가 가면을 벗는지 벗지 않는지 일 것입니다. 가면을 벗는가에 대한 답은, 역시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겠죠. 그것에 대한 말은 아껴두겠습니다.

평범한 회사원 존(돔놀 글리슨)은 항상 음악에 대한 열망에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젠간 음악을 하는 것이 꿈이죠.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음악생각 뿐입니다. 늘상 머리로 작곡을 하고 있고, 집에 와서 악상을 정리하는 것이 하루 일과입니다. 하지만, 막상 좋은 음악은 쉽사리 나오지 않습니다. 명곡이 떠올랐다 싶어 직접 곡으로 옮기다보면 언제나 ‘shit’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들 뿐이죠. 그러던 어느날 우연찮게 ‘소론프르프브스’라는 이름도 괴상한 밴드에 키보드 세션으로 들어가게 되고, 머리에 괴이하고 커다란 가면(입출력 포트도 있습니다!)을 쓴 채 생활하는 프랭크(마이클 패스벤더)를 주축으로 하는 이 밴드의 괴짜 멤버들과 함께 아일랜드 깊숙한 곳에서 반 감금상태로 음반제작에 들어갑니다.

존은 이 괴상한 무리에 점점 매력을 느끼고, 프랭크 곁에서 영감을 받으며 창작욕을 불태웁니다. 그런 와중에 멤버들 몰래 그들의 기이하고 괴상한 행동들과 음반제작 상황을 유튜브에 생중계 하고 소론프르프브스는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매니아층을 얻게 되죠. 이윽고 음반 작업이 끝나고, 유튜브에서 얻은 작은 명성으로 뮤직 페스티벌에 초대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때부터 멤버들의 사이에선 점점 갈등이 불거집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이 영화는 프랭크를 위한, 프랭크에 의한 영화입니다. 밴드의 멤버들은 전적으로 프랭크를 신뢰하며 영감의 원천, 아니 영감 그 자체로서 여기고 있고, 사실상 프랭크야말로 소론프르프브스의 존재 이유입니다. 가면을 쓴 프랭크는 그 자체로 미스터리이고, 그가 내뱉는 말과 소리는 그야말로 음악적 재능의 현신입니다. 가끔은 일종의 현자처럼 보이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음악 세계나 언제나 쓰고 있는 가면을 제외하면 다른 멤버들에 비해 오히려 정상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밴드 멤버들 중에 유일하게 존을 인정하기도 하구요. 성격으로 보자면, 정신병력이 있는 돈(스쿳 맥네이리)이나 시도 때도 없이 존을 쓰레기취급하는 클라라(매기 질렌할)쪽이 훨씬 이상합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장점 역시 프랭크에게 기인합니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서도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냅니다. 실제로 손짓이나 몸짓만으로도 그의 얼굴 표정이 가면 너머로 보일 정도니까요. 숨겨지지 않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연기하는 어눌한 듯한 말투 역시 매력적입니다. 설정된 대사와 행동만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이지만, 마이클 패스벤더는 그 매력을 곱절로 끌어올리는군요. 매기 질렌할 역시 매력적입니다만 배역 상 어쩔 수 없이 애매하게 소모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다크나이트처럼 딱딱하고 반듯한 배역보단 이쪽이 훨씬 잘 어울리는군요.

하지만 프랭크의 매력을 걷어내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의 대부분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반대로 이 영화의 단점입니다. 예술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공감 갈만한 상황이 펼쳐지는 초중반의 재기발랄한 장면들이 지나가면 천재적인 영감에 대한 열등감, 그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괴로움들과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 같이 예술가들이 겪을 수 있는 갈등이 주로 묘사되는데, 너무도 자주 볼 수 있는 진부한 설정들인데다 거의 까메오에 가깝던 밴드 멤버들이 감정적으로 서로 부딪히며 뜬금없이 신파조의 분위기로 흘러갑니다. 클라이막스로 달려가며 벌어지는 사건들도 결말을 위한 작위적인 장치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아마도 이렇게 급격하게 호흡이 떨어지는 것은 이 영화의 주제이자 키워드인 프랭크란 존재, 예술가의 천재성이 형상화된 이 캐릭터의 깊이가 생각보다 깊지 않은 것이 주된 요인으로 보입니다. 천재성이 가져온 불우한 어린시절, 자폐적인 성격과 그걸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부모의 모습 같은 것들을 단편적으로 비춰지긴 하지만, 그에 대한 성찰이 얕은 탓에 여전히 프랭크의 천재성은 그냥 저절로 굴러들어온 탤런트처럼 보이기만 합니다. 그래서 멤버가 다시 모이는 마지막 장면은 그 많은 사건들을 겪고도 아무 의미없이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앨범을 만들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들과 소론프르프브스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악들(저는 시겨 로스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마이클 패스벤더의 신들린 듯한 몸짓과 귀여운 유머들은 영화를 시종일관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밴드를 좋아하거나 마이클 패스벤더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즐거운 100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구요.) 하지만 ‘비긴 어게인’과 같은 음악영화를 상상하거나 깊은 영화적 완성도를 기대하신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러닝타임이 짧아 늘어지는 장면이 없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겠죠.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 이해웅(http://yarkteim.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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