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만큼 착실하게 이어지는 시리즈 물도없습니다. 이번 7편 이전까지 23억불이 넘는 흥행수익을 올린 그야말로 블록버스터시리즈 물이죠. 이야기가 온전히 이어지지 않는 것과 퀄리티가 들쑥날쑥하다는 것이 조금 걸리는 점이긴 합니다. 그래도 3편인 도쿄드리프트이외에는 오리지널 멤버가 고정적으로 출연하고, (억지로 끼워 맞춘다면)오리지널 멤버들 사이의 사건과 유대감은 시리즈 전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꾸준한흥행성적을 내는 시리즈 물은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하죠.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미덕이라면 역시 미친 듯이 질주하는 슈퍼카들의 향연과 정신없이 밀어붙이는 액션 시퀀스에있겠습니다. 그러니 스토리가 조금 이어지지 않는다고, 기승전결의구조가 허술하다고 해도 크게 흠이 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주 당당하게 그래, 나 단순해. 어쩔건데?’하는 배짱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빈 디젤이 몸을 던지며 차를 박살내고폴 워커가 파란색 GT-R의 타이어가 녹아버릴 때까지 악셀을 밟는 것만으로도, 영화표 값 만원은 하는 영화죠.

사실 이 단순함의 미덕은 요 근래 블록버스터에서 찾기 힘든 점이긴 합니다. 21세기블록버스터의 8할은 차지할 마블과 DC의 히어로물은 사전지식이없이는 점점 보기 힘겨워지고 있습니다. ‘히어로물은 절대 보지 않는다는관객도 생길 지경이니까요. 거기에다 그 외의 블록버스터들은 점점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끼워넣으려고 합니다.(다크나이트의 악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개인적으로 한없이 어둡고무거운 영화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어설픈 다크한 맛양념을첨가한 영화는 아예 간을 안 한만 못하곤 합니다.(대표적으로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자신 있게 들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분노의 질주시리즈가가지고 있는 소위 90년대 감성의 터뜨리고! 부수고! 박살내는! 단순한 매력은 점점 이 시리즈 고유의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방면으론 위에서 비난한 마이클 베이 감독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보여주었었는데, 제발 이젠 인간처럼 행동하는 비-인간에서 벗어나 화끈한 18금 액션 영화나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7편에서도 이 시리즈의 고유한 매력은 여전합니다. 시리즈에 대해 가물가물한 관객들을 위해 예의처럼 치루는 캐릭터 소개가 대강 끝나면 이미 정신없이 악셀을 밟고있습니다. <컨져링> <쏘우> 등으로 유명한 제임스 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나쁘지 않은 액션 연출을 보여줍니다. 전작들보다 (제이슨 스타뎀의 출연 영향인지) 맨몸 액션의 비중이 높은데, 꽤 인상적인 액션씬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빈 디젤과 드웨인 존슨의거대한 몸집을 이용한 액션이 특히 인상 깊은데, 마치 킹콩과 티-렉스의싸움처럼 현란하게 주먹과 발을 놀리는 적을 붙잡고 메치거나 레슬링 기술을 응용해 저먼 스플렉스 같은 것을 날려줍니다. 주먹도 본 시리즈에서 파생되어 수많은 액션영화를 감염시킨 격투기의 그것이 아니라 한방으로 적을 삼 미터는 족히날리는 괴수의 그것입니다.

빈 디젤과 드웨인 존슨 가운데 있는 탓에 제이슨 스타뎀이 왜소해 보이는(!) 희귀한영화라는 장점을 충분히 활용합니다. 미셸 로드리게즈의 단독 격투씬도 존재하는데, 삼보 류의 기술을 사용하는 러시아 계열의 여성과 그야말로 살벌한 격투를 펼칩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헤이와이어에서지나 카라노의 액션 이후로는 가장 여성성을 버리고 펼치는 여성끼리의 격투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매력에 자동차가 빠지면 안되겠습니다. 자동차를 이용한 액션씬은 크게 산길에서 신의 눈이란 해킹프로그램을 개발한 해커 램지를 구출하는 씬, 그 후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간 신의 눈을 되찾기위해 아부다비의 고층 빌딩에서 현존 최고의 슈퍼카인 라이칸 하이퍼스포트’(무려 39억을 호가하는 녀석입니다.)를탈취하는 씬, 그 후 신의 눈을 찾기 위해 LA도심을 습격한악당들과 전면전을 벌이는 하이라이트 씬까지 세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영화 자체가 이 세 씬의어설픈 짜집기이긴 합니다. 씬 바이 씬의 개연성을 위해 보는 영화는 아니니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세 씬 다 아드레날린이 풍풍 뿜어져 나오는 초전박살의 액션씬들이긴 합니다만, 역시하이라이트 씬에서 차 세대로 나누어 탄 멤버들이 램지를 농구공처럼 주고 받으며 무인기와 전투 헬기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그러면서 액션블록버스터의 주인공답게 도심이 쑥대밭이 되는 것에는 신경도 안 쓰는) 장면들이 가장 박진감 넘쳤습니다. 역시 분노의 질주 시리즈라면 자동차들이달려줘야 하는 것이죠. 특유의 자동차를 이용한 기물파손(…) 장면들도여전합니다.

물론 영화를 보는 내내 몇몇 물음이 불쑥불쑥 떠오르긴 합니다. 전세계전자장치를 실시간으로 해킹하여 카메라처럼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 해커가 왜 그렇게 몸매가 좋은 건지, 등장하고나선 왜 엔터 치는 일만 하는지, 왜 전투 헬기가 버젓이 LA도심에서날아다니며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전투기가 도착하려면 3분이나 남은 건지, 아니 애초에 어떻게 미국 영공을 들어오는 것이 가능했는지까지, 이성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엔진소리에 다시 쏙 들어가버립니다. 일단, 이성적인 판단은 극장에 나서기 전에 집 안 중요한 곳에 보관하시고가장 사운드와 스크린이 좋은 관을 골라서 관람하신다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폴 워커에 대한 헌사가 짤막하게 엔딩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동료이자 또 다른 가족으로써(실제로 빈 디젤과 폴 워커는 실생활에서도형제 같은 관계였다고 합니다.) 마치 이 분노의 질주영화의 오코너처럼 홀연히 떠난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사랑하는지 잘 보여준 엔딩 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영화 내용과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마지막 토레토의 독백을 들으며 울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폴 워커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팬이라면 반드시봐야하는 그의 유작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배우인 동료에게 스크린을 빌려 보내는 헌사로써는 최고의엔딩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7편이나 되는 영화를 함께한 역사가 떠난 이나 남겨진 이들에겐 가장 큰 힘이겠죠.

★★★

저작권자 © 게임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