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리투 감독이 때때로 배우와 스텝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는 건 다들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제작 발표를 듣는 순간 '아, 이것 참 여럿 죽어나가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고편만 봐도 오한이 오는 영화였는데 본편은 그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이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되었고, 심지어 당시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몇몇 씬을 제외하곤 모두 자연광을 사용해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기술적인 문제들을 제쳐두고서라도, 추워 보이는 장면에선 실제로 추웠다는 것이고 어두운 장면에선 실제로 어두웠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주인공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처참한 생존기'라는 점입니다. 스크린 너머로 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히고 손발이 오그라들 것(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같은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촬영장은 그야말로 영화 내용 못지 않게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수준이었겠죠. 그렇다면 적어도 결과물은 그 고생만큼의 가치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다행히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긴 합니다.

<레버넌트>의 이야기는 19세기의 실존인물 휴 글래스의 생존기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모피 사냥을 하던 중 회색 곰을 만났지만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휴 글래스는 초주검 상태로 동료들 앞에 당도하지만, 그와 함께 가다 인디언 무리에 잡힐 것을 두려워한 동료들이 그를 버리고 가버립니다. 글래스는 자신을 버린 그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4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여정을 지나 그들 앞에 나타납니다. 무시무시한 이야기죠.

이 실화에 글래스와 인디언 사이에 낳은 아들 '호크'를 넣어 새로운 관계를 형성시킵니다. 회색 곰의 습격에 죽을 뻔하고, 아들의 죽음을 목도한 후 복수의 화신이 된 글래스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혼자 살아남아 복수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실은 거대한 자연 속에 있다는 것과 '혼자'라는 것은 모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만 없다 뿐이지, 온갖 살아있는 것들과 죽은 것들이 득시글 거리는 것이 자연이니까요.

<레버넌트>의 내러티브는 아주 간단합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글래스가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남아 복수를 한다'라고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이야기가 중요한 영화는 아닙니다. (혹은, 이야기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후반부에 들어 내러티브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 영화의 단점입니다. 단순하다는 것이 모두 단점이 될 순 없지만 단순한데다 설득력이 약하면 단점이 될 수 있겠죠.) 휴 글래스가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순간순간의 힘이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존기는 일련의 Man Vs. Wild 같은 류의 자연과 싸워서 얻어낸 인간의 승리!라기 보단, 복수에 대한 강한 의지로 구천을 떠나지 못한 원령같은 존재가 되는 일에 가깝습니다. 삶에 대한(복수에 대한) 초인에 가까운 의지와 그를 둘러싼 대자연-혹은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 간의 공진(共振)현상이 주제라고 할까요.

이런 거창한 주제를 관객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매개체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에 한해선 압도적으로 촬영의 힘이 그 역할을 합니다.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 감독은 <그래비티>, <버드맨>에 이어 또 한번 경이로운 순간을 체험하게 해줍니다. 로케이션-자연광 촬영이 고통스럽고 힘든 것인 만큼 그 아름다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마치 수년의 시간을 들여 공들여 촬영한 고품질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영상입니다. 여기에 휴 글래스의 처절한 인생을 얹으니, 3D 안경을 써서 튀어나오는 영화를 보며 놀라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더욱 실감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글래스 역을 맡은 디카프리오와 악당인 피츠제랄드 역을 맡은 톰 하디의 연기는, 연기도 연기지만 촬영을 하면서 느꼈을 고통이 스크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져와서 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특히나 디카프리오는 '그래, 이쯤이면 이제 그만 오스카를 그에게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소위 말해 '개고생'을 하는데, 그간의 필모그라피들도 쉬운 역할을 아니었지만 극한을 뛰어넘는 고생을 합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 연기가 실제 고생한 것에 비해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진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분명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묘하게 기시감이 드는 캐릭터와, 지나치게 험난한 인생역정으로 인해 '연기'를 지나쳐 '체험' 쪽에 가까운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적어도 그가 맡았던 배역 중 최고의 연기라고 할 순 없겠습니다. 그에 반해 오히려 톰 하디의 연기가 굉장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갈등 상황을 매끄럽게 이끌고 나가는 것은 그의 연기에 기대고 있는 편이 많습니다.

여러모로 압도적인 영화입니다. 특히나 장면장면마다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촬영이 돋보이는 영화죠. 하지만 이냐리투 감독 특유의 '영화 제작' 자체에 대한 맹신 같은 것이 드러나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연출 방식이 오히려 영화 자체의 힘을 떨어뜨리는 느낌입니다. (영화 특징 상 와이드 렌즈를 사용해 피사체 가까이 접근하는 로우 앵글 씬이 많은데, 카메라에 의도적으로 입김이 맺히고 물방울과 선혈이 튀기도 하죠. ) 장점이 많은 영화이긴 하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론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들은 <버드맨> 이전의 작품들이 더 가슴에 와 닿는군요. 특히나 바로 직전에 본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8>과 비교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분명한 것은 영화는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숨김없이 드러나는 매체이고,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 그것이 오롯이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시종일관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던 <헤이트풀8>과 <레버넌트>는 극단에 서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 하나를 택하라면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즐거운 쪽을 택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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