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수많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를 분류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죠. 가장 단순한 방법은 아마도 장르로 구분하는 법일 겁니다. 물론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자 영화의 기획을 시작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겠습니다만, 관객 입장에선 편한 분류법이죠.

아주 큰 범주로 나누자면, 재미있고 재미없는 영화로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분류법이라면 '작품성'에 집중한 영화인가, 영화적인 '재미'에 집중한 영화인가로 나눌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 모든 분류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장르 구분이야 애초에 의미가 없는 수준이고 재미있으면서 재미없는 영화도, 재미없는데 재미있는 영화도(선문답이 아니라, 말 그대로입니다.) 말이 됩니다. 대놓고 재미를 추구한 영화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을 때도 있고, 아트-시네마를 목표로 만들었지만 그 재미가 헐리웃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영화도 분명 존재합니다.

<검사외전>은 당연하게도 작품성보단 영화적 재미를 추구한 영화입니다. '유쾌한 버디무비'라는 홍보문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합을 맞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와중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카타르시스를 주려고 하는 영화죠.

잠시 다시 영화적 분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사실 작품성을 추구한 영화의 대립점에 있는 '재미'를 위한 영화의 경우엔 오히려 그 만듬새가 더 정교한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현재 마블의 프랜차이즈들이 그렇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 역시 그렇죠.(둘 다 디즈니의 프랜차이즈긴 하네요.)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인 <스타워즈:깨어난 포스>도 매끄럽다 못해 이야기나 그 진행에 일말의 의구심도 들지 않을 정도로 매끈한 이야기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디즈니 놈들....!) 역대 최고 수익의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는 말할 것도 없죠. 오히려 아트 시네마의 경우 실험적 구성으로 플롯이나 개연성을 뒤틀 때도 많고, 신경을 쓰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니, <검사외전>이 비록 작품성을 추구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는 담보가 되어야 흥미가 발휘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영화의 외적인 완성도는 크게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촬영도 나쁘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도 내노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인 만큼 딱히 흠잡을 데 없구요. 문제는 이야기 자체에 있습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변재욱 검사는 피의자들을 때려서 자백을 받아내곤 하는 불량검사지만, 불타는 정의감과 냉정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소위 엘리트 검사이기도 합니다. 캐릭터부터 벌써 느낌이 오시겠지만, 이 영화는 클리셰를 아-주 많이 담고 있습니다. (물론 클리셰를 많이 담고 있다고 해서 나쁜 영화라고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특히나 배우들과 영화의 소재로 인해 연상되는 영화가 꽤 많은 편인데, 최근 작으로만 보자면 <신세계>와 <베테랑>, <검은 사제들>을 비빔밥 그릇에 넘고 비빈듯한 느낌입니다.

여하튼 저 변재욱 검사는, 거대 그룹이 얽혀있는 사건을 조사하는 도중 그가 맡은 피의자가 변사체로 발견되어 살인 혐의로 체포됩니다. 결국 꼼짝없이 누명을 쓰고 15년 형을 선고 받게 되죠. 그렇게 한참을 복역하던 중 그 안에서 능글능글한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을 만나곤 그를 통해 누명을 벗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이들을 싸그리 소탕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영화들의 특징들을 조금씩 넣으려는 모습이 보이긴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기운이 보여요. 버디무비로써의 느낌, 느와르로써의 느낌, 케이퍼 무비로써의 느낌, 오락영화면서도 사회비판적인 느낌, 거기에 슬랩스틱 코미디나 법정드라마의 느낌도 조금씩 섞여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느낌이 다 겉돕니다. 분명 재료는 맞는데, 뭘 잘못 넣었는지 비벼지질 않고 재료가 다 따로 놀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죠.

일단 변재욱 검사라는 캐릭터의 성격이 너무 평면적입니다. 그에게 동기를 줄 수 있는 '복수'와 '정의실현'의 모티브가 굉장히 약해요. 애초에 너무도 허술한 '그 사건'으로 15년형을 받은 사람이 교도소 안에서 온갖 법률 상담을 통해 다른 이들이 재판을 승소하게 해준다?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의 시초가 되는 사건이 허술하다 보니 변재욱의 반대편에서 악역으로써 무게추가 되어야 하는 우종길의 기반도 굉장히 약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누명 씌워서 15년 형을 줄 수 있으면, 다른 영화의 악당들이 억울해서 데모라도 할 지경입니다.

이러다 보니 그가 하는 행동들이 다 맥이 빠져 보입니다. 심지어 교도소 안에서 지내는 그의 모습은 아주 여유로워 보이기 까지 합니다. 한치원을 처음 만날 때 한차례 푸닥거리를 하긴 합니다만, 황정민의 연기로도 그 어중간한 캐릭터를 제대로 살릴 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치원을 시켜서 우종길의 약점을 하나씩 확보해 나가는 과정도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사기라서 딱히 흥미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교도소 벽엔 무슨 메모를 그렇게 붙여 놓았을까요...) 특히나 클라이막스의 재판에서 우종길을 함정으로 빠트리는 장면은 실소가 나올 지경입니다. 그렇잖아도 '겨우 저렇게...?'싶은 사건을 '고작 저렇게...?' 싶은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분위기를 팍 잡고 긴박한 스코어를 깔지만 전혀 '프로페셔널'한 법정의 느낌도 들지 않아요.

더불어 조연들의 캐릭터도 너무나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마치 생각이 없는 종이인형처럼 순간순간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도 다릅니다. 난데없이 배신을 하거나, 호감을 보이다가 갑자기 심한 린치를 가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런 감정기복이라도 있는 조연이라면 좀 비중이 있는 편이고, 비슷한 분량으로 나오는 조연들이 러닝타임 내내 똑같은 대사만 반복하다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엔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강동원'입니다.

거의 강동원의 원맨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 허술한 이야기와 개연성이 계속 어긋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화의 매력을 살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치밀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쉽게도...) 평소 본인 모습이라고 해도 그렇게 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능글맞고 유머러스한 사기꾼을 능청맞게 연기하는데, 한치원이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다 재밌다고 이야기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입니다. 시종일관 엉터리 영어를 쓰고 애교를 부리고 여자를 꼬시며 밉상 짓을 하는데도 전혀 밉지 않습니다. 역시나 <군도>나 <검은 사제들>에서 보았던 것처럼, 강동원이란 배우는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강동원 아니겠습니까! '에이, 저런다고 저 여자가 쟤한테 반하는 게 말이 돼?' 하는 상황을 말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죠.

물론 그의 캐릭터도 아주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딱히 변재욱을 도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사건을 해결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를 돕습니다. 물론 교도소에서 그를 꺼내준 것도 변재욱이고, 형 동생 사이로 나름 애틋한 우애도 쌓았(다고 영화는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글쎄요...)고, 한치원이 이 일에서 빠지려고 하자 아는 사람을 시켜 그를 협박하기도 하지만요. 그러고보니, 자신을 협박한 점에 대해선 또 아무 악감정도 안 갖는 아주 착한 사기꾼입니다. 게다가 한치원를 찾아내서 린치를 가할 정도의 커넥션이 있으면 그 전에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보고 나서면서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이 드는 영화입니다. 재미있는걸 보여주려 노력하지만 눈에 걸리는 점이 너무나 많고, 그러면서도 강동원이 나오는 장면에선 난데없이 맨바닥에서 개연성이 생기는 것도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죠. 그래도 확실히 '재미있는' 장면들이 있으니 재미있는 영화라고는 해야겠습니다만, 이만한 재료와 배우를 가져다 놓고도 이렇게도 시금털털한 장면들을 만들어 낸 건 분명한 낭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뭐, 강동원의 매력을 살리는 게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백점 만점이겠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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