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컴백은 사람들을 언제나 설레게 만든다. 부진에 빠졌던 스포츠 스타가 재기에 성공하거나, 부침을 이어가던 배우가 이미지 쇄신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기가도를 달리는 모습은 해당 선수, 배우의 팬에게는 기쁨이자 호사가들에게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고는 한다.

PC방 점유율 순위 20위권에서 한 자릿수 순위로 치고 올라온 테라의 순위 급상승은 잊혀진 야구선수, 전성기가 지난 걸그룹의 재조명만큼이나 극적인 컴백 스토리와 일맥상통한다. 리그오브레전드, 서든어택. 이 2개의 게임이 전체 점유율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와중에 점유율 0.5% 높이는 것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어려워진 상황이기에 테라의 이번 '역주행'은 더욱 눈길을 끈다. 

훈훈하게 끝날 수 있는 이야기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정신을 차리고 뼈를 깎는 노력을 거듭한 끝에 테라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엘린 어린이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발키온 연합에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는 이야기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테라의 역주행을 바라보고 있으면 훈훈함과 동시에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현재 테라의 역주행을 살펴보면 이 현상의 배경에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의 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게임성보다는 단기 이벤트가 먹히는 현실>

테라는 분명 준수한 게임성을 지니고 있는 게임이다. 논타겟 전투는 기존 포인트&클릭 방식을 택한 MMORPG의 전투보다 직관적이면서도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여기에 수 년간의 개선작업을 통해 불편하지 않고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분명 현재의 테라는 2011년 당시의 테라를 뛰어넘은 게임이 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테라의 역주행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부분은 지난 1월, 테라의 역주행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갖춰져 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게임성이 역주행의 원인이 됐다면, 넥슨으로 게임이 이관되기 이전부터 진행됐어야 했다.

일각에서는 테라의 이번 역주행의 주된 원인으로 넥슨의 PC방 마케팅이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넥슨은 지난 2월 4일부터 테라의 PC방 접속시간 100시간이 넘으면 게임 내 최고 등급 무기인 '철기장 카이락'의 15강 무기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기간 테라의 PC방 점유율은 2%를 넘기도 했다. PC방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이벤트를 통해 게임의 인기를 높이는 행동을 비판할 수는 없다. 모든 게임이 하고 있는 일이며, 이런 이벤트가 신규 유저 뿐만 아니라 게임의 기존 유저들에게도 혜택을 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팬 서비스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간 중에 테라의 게임성은 전혀 부각이 되지 않고 오롯이 파격적인 이벤트 내용만 부각됐으며, 그 이후에 어떤 즐길거리가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부각이 되지 못 했다는 점이다.

게임성의 발전으로 인한 유저몰이가 아닌 단기적인 이득을 전달하고 이를 노린 유저들이 일시적으로 모여드는 현상은 그간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종종 있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들은 결과적으로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 하고 다시 하락세를 겪고는 했다. 일시적인 부스터는 사용했지만 이를 이어갈 모멘텀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게임성의 개선과 병행해서 파격적인 이벤트가 진행된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사례는 드문 것이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장기적인 안목이 부족하다고도 볼 수 있고, 마케팅 역량에 비해 개발 역량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테라 역시 이러한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테라는 NHN엔터테인먼트에서 서비스 될 시기에도 후반부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은 바 있다. 넥슨으로 이관한 후에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어떤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크게 공지된 바가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이들이 'PC방 100시간 이벤트' 이후의 테라의 행보에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이벤트 종료 이후 테라의 PC방 점유율 순위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3월 4일 기준) 이러한 의구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MMORPG 시장의 침체와 신작 게임의 부진>

국내 MMORPG 시장은 빙하기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출 순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너른 유저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냐는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국내 MMORPG는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기존 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던 MMORPG는 모두 PC방 점유율 상위권에서 모습을 감췄다. 블레이드&소울과 아이온 등은 꾸준하게 기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시장에서 드러나는 영향력과 실제로 거둬들이는 매출 규모 역시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모습이다. 

그나마 이들 게임들은 모두 출시된지 수년은 지난 게임들이다. 신작 MMORPG는 이들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은 큰 호응을 얻지 못 했으며, 작년 연말에 출시된 블레스 정도가 점유율 10위 안에 이름을 남긴 정도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기대작으로 꼽히던 트리오브세이비어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 하는 성과를 거뒀다.

테라가 최근 다시 조명을 받는 것은 이러한 시장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풀이도 나온다. 대체자가 등장하지 않아서 30대 후반의 베테랑 공격수가 계속해서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현상과도 비슷하다. 

'MMORPG를 하고 싶은데 마땅히 할만한 MMORPG가 없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신작 MMORPG에서도 만족스러운 재미를 찾지 못 한 유저들이 즐길만한 MMORPG를 찾을 시기에 넥슨으로 이관하면서 마케팅을 실시한 테라가 대중의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수년간 서비스 됐다는 이야기는 게임이 구닥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시간동안 시장에서 검증을 받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테라의 재미 자체는 검증이 됐으니 유저들이 몰릴 수 밖에 없다. 

이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검증된 재미를 지닌 게임이 새로운 시도를 한 게임들을 제치고 높은 점유율을 보인다는 것은 게이머들이 그만큼 새로운 패러다임보다는 익숙한 재미를 찾는다는 현상의 반증이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익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게임사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그만큼 안전한 길을 찾는데 급급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국내 MMORPG 시장에서 장르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게임이 나오지 않는 답보 상태가 지속되는 원인이라 하겠다. 게다가 MOBA 장르가 MMORPG를 대체하게 되면서, MMORPG 장르에 신규 이용자가 유입되지 않으니 MMORPG 시장의 '고인물'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테라의 역주행은 녹녹치 않은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 현황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테라가 다시 인기를 얻는 모습을 보고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로 인해 또 하나의 기대를 하게 된다. 테라의 역주행이 반짝하는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이를 통해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에서의 새로운 생존 방법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테라의 행보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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