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특성 상 기자들은 모바일게임의 출시를 앞두고 진행되는 간담회에 참석하거나, 게임의 출시에 앞서 소개자료를 받아 볼 기회가 많다. 수 없이 많은 게임이 출시되는 이때, 남들보다 먼저 자신들이 준비한 게임을 알리기 위한 게임사들의 노력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간담회를 참석하거나 자료를 보게 되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표현이 있다. 세부적인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내용은 일맥상통하기 마련이다. 성장의 재미, 육성의 재미, 강렬한 액션을 담았다는 이야기다. 특히 RPG 장르에 대한 간담회나 자료에서 이런 표현을 접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모바일 RPG에서 유저들이 기대하는 부분이 저런 부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 집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게임들이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문제라기 보다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은 아쉽다. 하나의 캐릭터와 아이템을 여러 개의 등급으로 분류하고 레벨링, 강화, 합성으로 더 좋은 캐릭터와 아이템을 만든 후에 이를 조합한다. 좋은 캐릭터와 아이템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반복전투를 해야 한다. 이때 좋은 캐릭터와 아이템의 존재는 유저들이 반복전투를 수행하게 하는 목적이 되므로, 이를 통해 반복 플레이의 동기를 부여한다는 흐름이다.

현재 출시되고 있는 대다수의 모바일게임이 이런 공식을 따르고 있다. 성공한 사례를 따르는 것을 두고 막무가내로 비판할 수는 없다. 기업은 수익을 내야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거둔 게임을 통해 이미 시장에서 공인 받은 시스템을 차용하는 것은 영리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축구에서도 어느 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면 이를 차용하는 팀이 나오기 마련이며, 이를 통해 크리스마스 트리, 토탈사커, 펄스 나인, 게겐 프레싱 등의 포메이션 혹은 전술이 유행하기도 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러한 점을 이해하더라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신작을 발표하는 대다수의 게임사들이 ‘우린 시장에서 인증 받은 강점을 탄탄히 갖췄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인증 받은 강점은 물론이거니와 여기에 더해 ‘이것’도 갖고 있다며 전면에 나서는 게임이 드물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떤 게임을 마주하더라도 어디서 본 것 같은 게임 같은 느낌을 받게 되기 마련이다. 2000년대 중반, SG워너비의 성공 이후 온통 미디엄템포 발라드로 점철된 국내 가요시장을 보는 느낌을 10년 가량이 지난 2016년의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받고 있다.

야구를 보다 보면 ‘5툴 플레이어’라는 단어와 ‘유틸리티맨’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가 있다. 모두 다재다능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유틸리티맨’이라는 표현은 쓰임새가 많다는 의미다. 얼핏 좋은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냥 좋은 뜻은 아닌 것이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거나 여러 재능을 가지고는 있지만 특출난 구석이 없는 선수에게 흔히 쓰이기 때문이다.

‘5툴 플레이어’의 뜻을 엄밀히 말하면 힘, 스피드, 컨택능력, 위치선정을 제외한 수비, 강한 어깨 등 야구에 필요한 다섯 가지 재능을 타고난 이를 칭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높은 타율, 많은 홈런, 많은 도루, 좋은 수비와 강력한 송구능력을 갖춘 선수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는 한다. 어떻게 보면 ‘5툴 플레이어’는 ‘유틸리티맨’의 발전형, 궁극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또한 어느 한두 가지를 빼어나게 잘 하는 선수는 ‘스페셜리스트’라 칭한다. ‘5툴 플레이어’와 ‘스페셜리스트’. 감독이라면 이런 부류의 선수를 탐내고 팬들은 이들에게 열광하기 마련이다.

최근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모바일 RPG들 중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유틸리티맨’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게임을 골라도 기본 이상의 재미는 보장한다. 하지만 특출나다는 느낌을 주는 게임을 만나보기는 어려우며, 특출난 강점이 없다는 것은 다른 게임이 나왔을 때 유저들이 쉽게 이탈할 수 있는 여지가 되기도 한다. 다른 게임을 해도 지금 하는 이 게임만큼의 재미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어린이가 장래희망으로 대통령을 꿈꿀 필요가 없는 것처럼 모든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게임을 개발하고 출시할 필요는 없다. 본 기자 역시 투자자도 아니면서 ‘실험적인 시도를 하라’고 개발사에게 이야기 할 수도 없다. 

다만 기자이기 이전에 게임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의 한 명으로 우려할 뿐이다. 애초의 지향점 자체가 ‘5툴 플레이어’가 아닌 ‘유틸리티맨’을 바라보고 있다면 이는 시장 발전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더군다나 글로벌 시장 진출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이기에 더욱 그렇다. 야구도 그러지 않았던가. 결국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은 ‘유틸리티맨’이 아닌 ‘5툴플레이어’ 혹은 ‘스페셜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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